봄이 왔어요
여기저기 꽃망울 터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계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봄이 왔다. 이즈음은 산책하는 것이 젤로 기다려지는 때이다. 오늘은 누가 깨어날까?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막 피어난 꽃들은 괜찮은지 살펴보게 된다. 오죽하면 꽃샘추위라 하겠는가?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며 걷다 보면 소리에도 민감해진다.
바람이 세게 지나가면 그 소리가 들리지만 약하게 산들거리며 오는 바람은 꽃잎이나 가지를 살살 흔들면서 소리 없이 지나간다. 그때 잠시 귀 기울이면 꽃들이 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막 피어나고 있는 홍매화를 지켜보다가 잠시 벤치에 앉았다. 처음 피어나는 홍매화를 보려고 몇 날 며칠을 계속 맴돌았는지, 그러다 한 송이가 피어나면 그리 반갑고 귀할 수가 없고 혹시나 여린 꽃잎이 찬바람에 날릴세라 노심초사한다. 나에게 들릴 듯 말 듯 하지만 꽃들의 세상에선 서로 ‘어서 나가자 어서 나가자 봄이 온 것을 알려야지’하며 서로 등 떠밀어 나오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생각이 미치면서 봄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소리가 있다.
첫 아이 산달이 다 되어가는 때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새벽이 생각난다. 예정일은 아직 보름이나 남아있었고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고 갑자기 내 안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양수가 터졌다. 아마도 그건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아랫도리에서 뜨거운 물이 확 쏟아져 나온다. 그 소리는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였을까? 실제로 소리가 났을까? 아직도 그게 궁금하고 지금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다. 혹시나 아이가 힘들지는 않을까? 같이 나와야 할 양수가 먼저 나와버렸다. 아마도 예정일보다 더 빨리 나간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나 보다.
양수가 터지는 그 소리가 어느 날 봄꽃이 두꺼운 가지를 뚫고 나오는 생명의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가지 소리는 외부에선 들을 수 없지만 마음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활기찬 기운이다. 어찌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만 듣는다고 하겠나, 소리의 미묘한 세계이다.
꽃망울이 터지고 양수가 터지는 것이 오랜 시간 기다림을 뒤로하고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모든 일은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밖으로 열린 나의 감각들이 내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경험이었다. 내가 하는 말속에 다 못한 말들과 상대에게서 듣고 있지만 다 하지 못하는 말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