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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Oct 29. 2024

신해철 10주기를 맞이하며

신해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건 대만 타이페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모처럼 맘에 맞는 지인 두 명과 변덕스런 날씨를 피해 기억에 남을만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다음이었다. 출국 전 신해철의 상태에 관한 기사를 접했지만 진짜로 죽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보통 연예인의 갑작스런 비보 기사를 접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드는데 신해철의 케이스는 대체 왜? 라는 황당한 의문이 먼저 찾아왔다. 젊은 시절 그는 ‘50년 후의 내 모습’ 이라는 곡을 만들 정도로 삶의 애착이 강한 사람이었고 사망 원인이 극단적 선택, 교통사고, 지병 같은 것들이 아니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가 떠난 후 매년 선후배 가수들이 모여 추모 콘서트를 했고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특별함 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처음으로 나도 10주기 트리뷰트 콘서트 티켓을 끊었다. 초창기 대학가요제의 무한궤도부터 시작해 솔로시절, 넥스트, 모노크롬, 각종 OST 앨범 등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가 만든 앨범을 사서 들었다. 중요한 팬 유입 경로였던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은 듣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나도 신해철의 팬이라 자처할 순 있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시절이라 밤낮으로 음악을 많이 듣긴 했지만 신해철의 노래들은 유독 내 카세트 플레이어에 반복되던 플레이 리스트였다.

     

이틀 간 진행된 신해철 10주년 트리뷰트 콘서트는 팬들에게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 공연이었는데 나 같은 경우 안타깝게도 후자에 가까웠다. 신해철의 커버곡을 최대한 많이 듣고 싶었지만 참여 가수들은 본인의 노래를 더 많이 불렀다. 흡사 열린 음악회 같은 분위기도 났는데 네임드 가수들의 히트곡을 라이브로 들으며 즐거워하는 관객도 많았지만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에 신해철이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최악인 건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만 빵빵하게 키운 거친 음향 때문에 뛰어난 가창력의 가수들 목소리가 죄다 잡아먹혔다는 점이다. 공연 첫날 영상을 보니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는데 진정 음향 담당자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반가운 넥스트 형님들과 함께 한 홍경민 고유진 김동완 트리오의 넥스트 명곡 릴레이와 국카스텐 하현우의 명불허전 샤우팅이 불편했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신해철을 알까? 그의 존재 자체와 ‘그대에게’ 같은 익숙한 곡은 알 수 있겠지만 그가 매년 트리뷰트 콘서트를 할 정도의 대단한 사람인지는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신해철은 팬심을 떠나 음악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을 뮤지션이라 확신한다. 죽어서 재평가된 가수도 아니며 현역 시절 그의 행보는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 외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무한궤도를 나온 뒤 아이돌 이미지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었음에도 밴드의 길을 가면서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넥스트의 곡들은 현 시대에 들어도 세련된 맛이 살아있고 가사 역시 사랑과 이별의 노랫말 홍수에서 다루지 않았던 여러 사회현상과 관점들을 담아내었다. 물론 몇몇 곡의 가사는 다시 들어볼 때 젊은 치기와 어설픈 허세가 과하다는 느낌도 있다. 보컬 역시 특유의 저음은 유니크하지만 팬의 입장에서도 뛰어난 보컬리스트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로는 그를 평가절하 할 수 없다. 신해철처럼 대중과 가까이서 호흡하며 시대의 목소리를 과감하게 외쳤던 음악인이 누가 있을까? 적어도 난 단번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92년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 에서 그는 천재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당시 내로라하는 뮤지션들 속에서 신해철은 고작 만 24살로 프로듀싱을 맡았다. 한국판 위 아더 월드와 라이브 에이드를 만들어 보겠다는 젊은 열정을 실현시킨 이 무대는 우리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 OST 앨범 역시 엄청난 수작으로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뒤집을 만큼 고퀄리티로 제작되었다. 비록 애니메이션 자체는 악평 속에 망했지만 넥스트의 OST 앨범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이천년 대 초 소몰이 창법의 유행과 아이돌 위주 음악이 부상하면서 본업인 뮤지션 신해철은 점차 옅어지고 시사 논객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음악인이 아닌 시사프로 패널로 등장하는 그를 보며 씁쓸한 맘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부터 달변에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할 말 다하는 스타일이라 열혈 팬만큼이나 안티도 많이 양산되었다. 그가 진보진영을 지지해왔던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별히 노무현에 대한 마음은 각별했다. 노무현이 서거했을 때 ‘민물장어의 꿈’을 울면서 부르는 걸 보며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인간적으로도 계산 없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도 노무현에 빠져있던 때라 함께 공감하며 봉하마을도 몇 차례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한국처럼 진영 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서 문화 예술인들이 정치색을 드러내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은 게 사실이라 대부분은 정치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한다. 하지만 나는 예술인들의 정치참여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 다만 이쪽 분야는 태생적으로 진보 쪽이 다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 보수를 지지할 경우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는 있다. 신해철이 살아있었다면 지금도 진보의 스피커 한 축을 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이재명을 지지하는 선언을 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마음이 몹시 아팠을 것이다.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관람은 이번 한번으로 끝날 것 같다. 네임드 가수의 화려한 무대도 주인공 없는 공허함과 한계는 지워버릴 수 없었다. 트리뷰트 공연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하늘 위에서 본다면 음악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젊은 시절 나는 신해철 특유의 도발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곡들을 즐겨 들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거친 모서리가 깍여나가다 보니 따뜻하고 희망을 주는 곡들이 더 좋아진다. 지난 트리뷰트 공연에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신해철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에피톤 프로젝트가 ‘It’s Alright‘ 을 불렀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곡이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곡이라 반갑고 뭉클했다. 싸움닭 이미지가 강한 그가 실상 얼마나 아름답고 힘이 되는 곡들을 많이 썼는지 요즘 세대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숨기려 애를 써도 눈빛이 어둡네요

괜찮아요 모든 것이 잘 될 거예요

설움이 북받칠 때 그냥 소리내서 울어요

괜찮아요 그 누구도 비웃지 않아요     

지금껏 쌓아온 게 모두 사라진것 같아요

괜찮아요 금새 다시 일어날 거에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 누구도 내일 일을 알 수 없어요     

저 고독의 거리에 던져진 채

갈 곳 없는 텅 빈 마음으로 홀로 선 그대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말아요

가끔씩 내게 기대도 난 무겁지 않아

기쁨과 슬픔 그 모든 게 삶의 일부죠

긴 세월이 지나가면 모두 다 흐릿해질 거예요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서두르지 말아요 이제 당신의 때가 와요

괜찮아요 앉은 김에 조금 더 쉬어요

누구나 두렵겠죠 이 거친 세상에선 괜찮아요

생각대로 계속 해 나가요     

이 같은 하늘 아래 또 하루를 살아 숨쉬며

느끼는 것이 기쁨 뿐인데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말아요

가끔씩 내게 기대도 난 무겁지 않아

기쁨과 슬픔 그 모든 게 삶의 일부죠

긴 세월이 지나가면 모두 다 흐릿해질 거예요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It's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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