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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May 04. 2016

괜찮아

나만 모르고 다 아는 사실

그림 - 김주희 작가님의 <Illusion>, 2014


내가 가장 힘든 순간


내가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밤길을 걸을 때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도 아니고 요즘처럼 몸이 아플 때이다. 검사로 발견되는 큰 병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 없이 견뎌야 하는 통증이 괴롭기만 하다. 그나마 십대 때는 증상이 와도 하루만 약 먹고 쉬면 금방 지나갔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약도 안 듣고 열흘은 족히 간다. 주말캠프에 멘토로 갔었는데 캠프 시작 전 갑자기 증상이 심해져서 마침 멘토로 오신 간호사 언니가 조달해준 약을 먹고, 약 때문인지 나름의 책임감 때문인지 1박2일은 무사히 보냈었다. 계속 심해졌다 괜찮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괴로운 것은 통증보다도 마음이다. 아프기 싫은데 자꾸 아픈 내 몸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몸이 무겁고 반응과 판단이 느려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든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아프다는 소리를 하면 돌아오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에 대응하는 것도 엄청 성가시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부정적인 마음 속으로 빠지는 것이다.


이 고통이 언제쯤 끝날까?


몸에 좋은 약을 먹거나 침을 맞거나 여러 가지 종류의 치료를 받고 나서도 나는 이런 몸살이 올 때가 많았는데, 그것은 분명 명현반응이 맞았다. 실은 나는 마음수련 명상 1과정 때부터 커다란 마음덩어리가 버려질 때마다 이렇게 아팠는데, 그것이 정말 '마음'과 맞물려서 나는 명현반응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명현반응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당시에 몸이 아픈 것은 나만 유난히 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음이 막혀 있었듯 온 몸의 기혈이 막혀 있었을 터라 그것이 하나둘 뚫리는 기분이기도 했다. 실제로 마음만 버렸을 뿐인데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 얼마나 몸이 약했으면, 마음수련 명상을 하고 나서 많이 건강해진 것이 이 정도다. 마음이 편해졌을 뿐인데 몸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보며 병을 키우는 것은 불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일단 아프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이다. 명현반응이고 뭐고 요며칠 너무 괴로운 내 마음 속에 빠져서 세상 모든 것이 미워보였다. 어지럽고 졸음만 쏟아지니 무언가에 집중을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아무 이유 없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며 엄살 부린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나야 말로 답이 안 나오는 내 상태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연수도 듣고 스터디도 하면서 바쁘게 지내다보니 지역센터에는 오랜만에 갔다. 막상 명상을 하니까 덮어놓았던 부정적인 마음이 잔뜩 올라와서 비우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였다. 아프다고 힘들어 하고 있는 나, 원망하는 나,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나, 부정적인 나. 모든 생각과 '나'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가짜'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또 그 속에 들어가서 이것이 나라고 믿고 있었다. 나의 입장에서 떨어져서 보니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는데 힘들어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몸만 나인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인데, 이 몸이야 좀 아파도 괜찮구나, 다만 그 속에 빠져 마음까지 괴로워질 필요가 없구나. 버리면 없다. 그래서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 그렇게 '나'를 버리면서 평온한 세상을 되찾고 나니까 이 글의 주제가 떠올라서 집에 오는 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불안에 빠진 나에게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에 위안을 얻었었다.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가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두려운 일들에 관하여, 두려움 속에 있는 당사자만 모를 뿐,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로 괜찮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나조차도 다른 사람에게는 괜찮다고 잘 말해주었으면서 나 자신에게는 가혹하기만 했는데, 그것이 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고통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생각들이 허상이라 가짜다. 가짜라서 다행이다.


내가 없으면 그림자도 없다


어제 <이중마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내 마음이 가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된 줄 알고 또 한꺼풀 덧댄 이중마음을 들고 있었다. 가짜인 걸 알았으면, 그것이 쓸모 없는 것임을 진짜 알면 당장 버렸을 텐데 나는 그대로 들고 있었다. 어제는 순간순간 혼자 버린 것이 전부였는데 오늘 센터에서 차분하게 방법대로 명상을 하고 나서야 내가 가짜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마음수련 명상은, 내 입장에서 떨어져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내 안에서만 나를 보고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넓혀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입장에서 나와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지나간 순간을 흘려보낼 수 있고, 가짜 마음을 다 버리면 세상 만한 진짜 나의 존재감을 느끼며 살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높은 자존감을 얻게 되기까지 내가 세상을 가리는 하나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빛을 가리고 서면 그림자가 생긴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그림자를 바라보고 앉아서 어둠 속이라 칭하며 울고 있는 존재가 또 사람이다. 그림자가 증거하는 빛을 등지고 괴로워 하는 어리석은 존재. 고통을 만드는 장본인. 그 내가 가짜라서 버리면 없다. 그리고 내가 없으면 그림자도 없다.


괜찮아, 돌아서기만 하면 되니까


우리는 모두 빛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세상은 아는데 나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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