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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Oct 03. 2016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버리다

마음수련 명상일기 - 저장강박증

이미지 출처 - 마음수련 대학생캠프 페이스북 페이지
* 마음수련 명상으로 '나'를 돌아본 이야기입니다. 마음빼기를 통해서 알게 되거나 변화되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 달라요~ :)


잡동사니를 버리지 않고 쌓아놓는 바람에 집이 온통 쓰레기장이 된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겠지만 몇 해 전에 봤던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제작진이 찾아 갔을 때 절대 집을 청소하면 안 된다고 하시는 할머니께 다짜고짜 쓰레기를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할머니의 사연을 들어주고 완고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열어서 결국 허락을 받고 쓰레기를 다 정리하게 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할머니의 그런 행동도 결국은 살아온 삶에 이유가 다 있었다.


나도 저장강박증이 있다. 온갖 강박증을 다 가지고 있는 것도 같고, 최근에도 강박적인 생각들 때문에 고생을 했었다. 전에도 강박증에 대해 읽으면 "이거 내 이야긴데..?"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수련 명상을 하기 전에는 심각하게 내가 저장강박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쌓여만 갈 뿐이니, 명상을 안 했더라면 '쓰레기집'이 내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간이 더 지나면 저절로 그렇게 되었겠지. 머릿속은 확실히 쓰레기통이나 다름 없었다. 어느 날 알아차려지는 내 모습을 보니 뭔가를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는 습관이,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진짜로 사용을 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쓰지도 않을 거면서 모아놓는 것이 문제였다.


위험한 소유, 저장강박증 [용감한 기자들 140회]

https://www.youtube.com/watch?v=lI_leC0-naE

앤디 워홀도 저장강박증이었다고 하니 위로가 되네?


쓸데 없는 기록 강박증


내가 저장하는 것이 부피가 큰 물건들이었다면 쓰레기집이 내 이야기가 될 뻔했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나의 경우는 특히 '글'을 저장하는 강박증이 심했던 터라 양은 많아도 부피가 작은 편이었다. 지식이나 기억 따위? 언젠가는 읽을 것 같지만 사실상 읽지도 않는 책이나 잡지를 모으고,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싶어서 상세히 기록하려고 하고, 어릴 때부터 공부했던 교재도 거의 그대로 두었으며, 여행 갔던 곳의 팜플렛이나 티켓, 열차표 따위도 보관했다. 아, 기록에 쓰이는 다양한 종류의 '펜'들도 잉크가 나오기만 하면 그냥 버리는 일 없이 다 모아 두었다. 한 번씩 정리를 할 때 공간이 부족하니까 조금씩 추려서 버리기도 했는데 그러느라 청소하는 데 쓸데 없이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해가 갈수록 먼지만 쌓여만 가는 것으로 그것들의 쓸모 없음이 더 확실해졌다. 정리는 안 되고 버리지도 못하니까 엄마의 잔소리도 심해졌다. 내가 모르는 사이 엄마가 대신 정리를 해주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엄마가 좀 내다 버리라고 하는데도 나는 버리면 큰 일이 날 것처럼, 그 책과 글들이 모두 내 소유로 있어야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밖에 절약이라는 핑계로 옷도 몇 년씩 안 입는데도 버리지 못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입을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그것들을 모아두는 것에 편안함을 느꼈었는데, 나에게 이것이 필요할지 필요 없을지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가짐'에 대한 집착


저장강박증 노인 증가…원인과 치료 방법은?

https://www.youtube.com/watch?v=5jpD4ODWfow


영상에 소개된 저장강박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1-2개 정도는 안심해도 되지만 7-8개 이상이면 이미 걸려 있는 것으로 의심해 봐야 한다고 한다.)

1. 물건에 대한 집착이 있다.

2. 물건에 애정을 쏟는다.
3. 물건을 모으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4. 두서 없이 무조건 물건을 모은다.
5. 요즘 판단력이 매우 떨어짐을 느낀다.

6. 우울증을 가지고 있. (75%정도가 우울증, 무기력증이라고 함)
7. 쓰레기까지도 모으려고 한다.
8. 물건을 모으면서 내 정체성을 알게 됐다.(물건을 통해서 자기 의미화, 동일시)

9. 요즘 불안감이 매우 커졌다.

10.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물건을 모으면서 내 정체성을 알게 됐다'에 소름... 내가 그랬다. 마음수련 명상으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문제만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이유를 함께 찾아서 버릴 수 있었다. 많은 문제점들의 원인이 되는 부분을 알기만 해도 대부분 해결이 되는데 그것을 버리면 당연히 강박증은 해결될 수밖에 없다. 영상에서도 저장강박증과 경제력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참 와 닿는다. 내가 하려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언젠가 글 <마음과 돈의 관계>에서 이야기했듯, 내 열등감의 뿌리는 '가난'이었다. 결핍은 집착을 낳기 때문에 더 무섭다. 돈은 물론이거니와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했고, 버리기가 아까웠다.


'지식'에 집착한 것도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지식을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식이 나에게 모든 답을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쓴 일기를 포함해 공부한 모든 것, 좋은 책들을 쌓아 놓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였던 셈이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정리해두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습관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기록하는 기록 강박증. 이것은 강박증이 생겨난 까닭부터가 내가 타고난 재능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다만 지금은 '가짐'에 대한 집착에 의해서 기록을 안 한다고 불편하지는 않다. 강박적 사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그저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모으는 습관과 나의 정체성


강박장애가 병인 이유는 내 의지로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일단 스스로 가장 힘들다. 알아차려도 고쳐지지 않고 물건을 버리는 것이 여전히 불안하다면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고 말 것이다. 나의 집착에는 '하고 싶은 것'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마음수련 명상 1과정을 할 때부터, 다른 것은 괜찮은데 '하고 싶은 것'을 버리려고 생각하니 눈물부터 핑 돌았다. 나는 모르는 것을 새롭게 배우는 것이 좋았고, 배움이 행복한 아이였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즐거움을, 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꿨고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많이 '알아야' 한다고 착각해서, 지식을 모으고 모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나'와 동일시했다.


꿈이 내 삶 자체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그저 생각에 머무를 뿐이었다. 막상 교사가 되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더 커졌다. 살아오면서 사진 찍은 게 그것밖에 없다 보니 내가 배워온 방식과 똑같이, 지식을 주입하려고 하는 교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릿속에 지식을 더하기(+) 하는 것이 익숙했고 그것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내가 더하기 한 것을 전해주는 것이 참된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서 얼마나 유연하고 열려 있는지 모른다. 그에 비해 나는 나이는 어리면서 생각과 행동은 나이가 많이 든 사람 같이 굳어 있었기에 스스로도 참 갑갑했었다.


비움으로 완성하는 행복한 삶


누가 교사 아니랄까 봐, 무엇이 옳은지는 잘 알고 말도 쉽게 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괴리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는 대로 유연하게 단순하게 지혜롭게 막힘 없이 살 수 있을까?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를 소개 받았을 때 선뜻 마음을 내고 '이것이다' 했던 것도, 내 머릿속에서 이제는 교육이 '거꾸로'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가 교육의 대안이다.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하느라 과부하가 되고 굳어 버렸던 내 머리는, 마음빼기 명상 덕분에 비로소 쉴 수 있게 되었다. 저장은 물질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감정과 마음도, 들었던 이야기나 지식 따위도 모두 내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그렇게 하고 싶어했으나 사진기 성능이 좋아서 뇌 속에 사진을 많이 집어넣는다고 똑똑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쌓여 있는 물건을 내다 버린다고 저장강박증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또 모으고 버리고, 모으고 버리고, 그 지겨운 쳇바퀴를 굴려 봐서 잘 안다. 스스로를 괴롭게 할 정도로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서 버리니 이제는 엄마가 말없이 내 물건을 갖다 버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집착이 없으니 자유로운 것이다. 무엇이든지 집착을 갖는다고 해서 내 것이 되지는 않았는데, 집착이 없으니 오히려 더 얻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버리고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지식을 비운 자리에 지혜가 찬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행복하고 좋았던 지나간 과거를 계속 붙잡고 있었던 나는, 그 기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 지금 이 순간의 행복과 기쁨을 더 만끽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채우기 위해서 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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