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명한 새벽빛 Dec 23. 2016

뒷담화의 감정해소 효과

마음수련 명상일기 - 원수

사진 - 메이플피칸파이


뒷담화는 나쁜 걸까?


나는 뒷담화를 나쁜 것으로 생각했었다. 뒷담화를 들으면 저 사람은 앞에서는 친한 척하고 뒤에서 욕을 하다니 '이중적'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다른 사람에게는 내 욕도 하겠구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게다가 뒷담화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은 유난히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뒷담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뒷담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남들 다 하는 뒷담화를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눈치를 보곤 했다.


마음빼기 명상을 통해서 좋고 나쁨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내려놓고 보니 이제야 그 모든 것이 나의 벽이었다는 것이 실감이 된다. 나는 정직에 대한 강박도 있었고,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쓸데없이 지나치게 엄격했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가족이, 친구가, 세상 모두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슬퍼했는데, 내가 옳다고 고집하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할 말이 없다.


여러 가지 경우에 사람들은 뒷담화를 한다. 그러나 대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무시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앞에서 바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체면'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혹은 돌아올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에 뒤에서! 뒷담화를 한다. 실제로 뒤에서 쏟아내는 감정만큼 앞에서 쏟아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원수는 가까운 곳에 있다


뒷담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뒷담화로 인해서 일어나는 웃지 못할 사연들이 많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내가 지치는 것까지 포함해서. 뒷담화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말하기에 앞서 뒷담화에 대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어서 꺼내보려고 한다. 편의상 친구 A, B로 지칭했지만 특정 인물을 가르키기보다는 내 기억 속의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 경우를 모두 포함하는 글자라고 보면 된다.


어린 시절, 친구 A가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하면서 B를 신랄하게 욕을 하기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며 B가 너무했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는 말에 혹해서 나는 마치 A와 부쩍 가까워졌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마치 다시는 B를 상종하지 않을 것 같았던 A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B와 딱 붙어 다니고 오히려 내가 B를 욕하더라 말했다는 사실을 B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해명할 기회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상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억울한 일이 쌓이니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힘들 때, 감정을 풀 곳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친구. 함께 다니고 있는 미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쏟아놓고, 정작 놀 때는 그 미운 친구에게 다시 다가가는 모순된 행동. 나도 다른 누군가와 함께 A의 뒷담화를 했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뒷담화 중인지도!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일기장과 글쓰기는 정말 좋은 감정 쓰레기통이다. 뒷담화로 감정을 실컷 쏟아내고, 듣고 있는 상대가 맞장구까지 쳐주면 속이 아주 후련해진다. 그러나 실은, A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뒤늦게 내가 A의 의도에 대하여 착각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A에게는 단지 B로부터 받은 상처와 올라오는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것은 B와 다시 친하게 지내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A에 대해 가졌던 마음이 그랬다. 오히려 더 잘 지내고 싶은데 관계가 자신의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을지도. 그때부터 내가 A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누군가 자신의 가까운 사람을 욕할 때, 궁극적으로 그는 상황이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말만 해


누구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원한다. 일단, 그것을 전제하고 뒷담화를 대했을 때는 상대의 감정에 덜 휩쓸리게 되고 중심을 잡을 수가 있었다. 이것이 뒷담화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A를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도움을 주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조차 내 착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상대의 뒷담화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때때로 정말 해결책이 필요해서 누군가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저 감정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A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뒷담화를 시작하는 그 순간 나에게 바라는 것은 '감정해소'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 이것을 기억하면 들어줄 때 아무래도 말을 적게 하게 되고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해결책이라는 것은 애초에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조차 자신이 이미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어떤 '답'을 건드려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좋은 조언가는 질문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는 것 같더라. 그때 질문자는 제 입으로 자신이 담아둔 '답'을 줄줄 말하고는, 조언가에게서 답을 얻었다며 기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뒷담화를 하는 나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공감하며 들어주기'인 것이다.


뒷담화만 해도 마음이 버려진다


그렇게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엄청난 감정해소 효과가 있다. 너무 미운 사람 앞에서 그 감정을 다 표현하면 그에게나 나에게나 다시 그 상황이 기억되어 또 하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게 된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뒷담화를 하면 그와의 관계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가 있다. 그렇게 비워낸 감정으로 다시 그를 대하면 조금은 성숙한 대처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오롯이 공감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말을 해줄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인 것 같다. 그들 덕분에 나도 많은 감정들을 덜어내며 살아왔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돌아본 마음을 쉽게 버릴 수 있는 '마음빼기 명상'을 시작한 이후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정을 비워낼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진 것 같다.


그토록 미워하던 원수에 대한 증오를 다 버리고 정작 그 사람과는 잘 지내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새로운 고비가 왔다. 다른 '원수'가 생긴 것이다. 미움을 다 버린 줄 알았건만! 마음수련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만났던 모순된 '나'는 모든 사람들을 다 미워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다 '미워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미운 마음이 가득 올라오자 나는 뒷담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미워했던 것은 '나'였구나


'미워하는 마음'을 쉽게 버릴 수 있다고 해도 잘 안 된다. 명상 방법대로 삶을 돌아보고 버리는 것이 중요한데, 특정 마음만 버리려 하면 아무것도 버릴 수 없다. 미운 이 고운 이는 내가 정해놓은 것일 뿐, 마음 자체에 밉고 고운 것은 없다. 그래서 그냥 다 버리는 것이다. 명상을 할 때 버리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 아닌 '나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면서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그것이 실제 그 사람이 아니라 오직 '나의 마음'일 뿐임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착각이다.


마침 필요한 때에 내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을 만나서 나는 새로운 원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딱히 나에게 조언을 주려고 하지 않고 정말 잘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어서 답답했던 마음이 아주 후련해졌다. 그런데 다음 날 명상을 하러 갔다가 나는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도움님이 '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그 도움님도 명상을 할 때 원수를 버리라는 말에 '나는 원수가 없는데...'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서야 모두가 다 원수였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진짜 원수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머리로는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바로 나의 모습인 것을 알면서도 버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도움님의 진심어린 고백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그 날 마음빼기가 아주 잘 되었다. 정말 내가 미워한 모든 것이 정말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의 뒷담화가 부끄러워졌지만 그 뒷담화 덕분에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마음을 더 잘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미워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가진 '나'를 버리고 나서 다시 만난 그 사람에게서 새로운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계기들이 생겨났고, 내가 먼저 감정적인 부분을 빼고 대화할 수 있어서 소통도 더 잘 되었다. 단점에 대해 생각하고 혼자 괴로워하느라 보지 못했던 그의 장점들이 보였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던 대화가 잘 되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가 달라진 것은 없었을 텐데, 내 마음이 달라지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정말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을 버려야 하는구나. 진짜 원수인 나를 다 버려야겠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는 건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을 미워하는 것이지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꼰대 이해하기 - 나를 돌아보면 꼰대가 보입니다

숨은 가시 찾기 - 내 마음에 박힌 가시 빼기

사랑하니까 - 아이들을 버려야 한다

믿지 못한 죄 - 인간관계, 가는 마음이 고와야 오는 마음이 곱다

이중마음 - 진심을 논하는 일의 허황함

세상은 나의 거울 - 모든 것이 나의 잘못, 그것이 희망의 이유

그게 다 내 모습 - 인정되니까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가짜 세상을 찢고 나오기 위한 강철의 선택 - 드라마 <W>로 빗대어 보는 마음수련 명상 끝까지 쉽게 하는 법

매거진의 이전글 일희일비(一喜一悲)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