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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Mar 02. 2016

사고의 비약

나는 과연 미친 걸까?

사고의 비약 : 연상활동이 지나치게 빨라 생각이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빠르게 진행되는 현상


지금은 머릿속이 고요하고 쓸데 없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좀 덜한 것 같지만 예전에는 내가 비약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성격에 의한 것이지 병적인 것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는데 방금 검색해보니 정신 장애의 일종이란다.


대화 장면에서 A라는 말을 들은 후 머릿속에서 BCD의 생각을 거쳐 E라는 결론을 내고는, 말로 표현할 때는 다 잘라 먹고 CE를 말해버리는 식이었다. 내 생각을 내 말이 못 따라 갔었다. 이것이 사고의 비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왠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테 사고장애가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도 문제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정상인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내가 가진 문제가 많기는 많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회복했다는 증거니까 걱정은 넣어둬)


그 중 하나로 우울장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지만, 브런치에 쓰고 있는 글들, 특히 글 <내 꿈은 말이야>는 예전에는 눈물 없이는 말도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의 좌절이 떠오르니까 꿈에 관해 연상만 해도 눈물이 나서 목이 메였다. 그만큼 통제 불가능한 우울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불안장애. 발표를 할 때면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목소리는 달달, 손은 덜덜 떨렸다. 얼굴은 새빨개졌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나치게 의식해서 긴장이 되었다. 갑자기 여러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가 오면 더 심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불면증도 있었고, 범불안장애가 심해져서 사회공포증, 공황장애까지 왔던 것 같다.


망상장애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미워해서 뒤에서 욕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이 드니까 장난으로 던진 말 한 마디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했다. 피해망상이라고도 하지. 그렇게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누르고 나를 못살게 굴었으니 우울증이 올 법도 했다.


이 외에도 회피성 성격장애와 신체형 장애, 건강 염려증 등등 ... 드러나진 않았지만 분노조절 장애도 있었던 것 같다. 화낼 일이 아닌데 화가 치밀 때가 있었다. 나의 경우, 그것이 공격적인 행동 대신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표현됐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울어?"라며 어이 없어 했다.


나는 과연 미친 걸까?


학교 특성상 심리학과 상담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많았던 것이 나는 좋았다. 프로이트가 정상의 기준을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증, 약간의 히스테리로 제시했다고 하기에 위안 삼기도 하고. 많은 극복 사례도 만날 수 있어서 희망적이었다.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 글이 희망의 이유가 되면 좋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심리학, 정신분석, 심리치료와 상담에 관한 많은 책들을 찾아 읽어보니 예외없이 모든 심리적 문제는 어린 시절에 원인이 있다고 하기에 나는 내 어린 시절을 끊임 없이 회고했다.


원인을 알 것 같았지만 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상담을 받든 심리치료를 받든 무엇을 하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뜻 용기를 내지는 못했었다. 금전적인 여유도 없거니와,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상담실 문을 두드릴 용기를 주었던 것이 네이버 웹툰에 이종범 작가님의 <닥터 프로스트>였다. 지금은 보지 않고 있지만 시즌1 때부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웹툰일 정도로 아주 재미있게 봤다. 드라마도 있다.


웹툰의 배경이 되는 것이 대학교의 상담실이라 나도 상담실을 가보자 싶어서 용기 내어 문을 두드렸는데 항상 잠겨 있었다. 학교 상담 교수님을 찾아갔어야 했다는 것을 알고는 시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강의에서 상담 교수님이 상담 사례를 강의 재료로 쓰시는 걸 봤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아도 상담자를 믿지 못하면 치유가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상담자 입장에서 나는 참 까다로운 내담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수련 명상을 할 때는 못 믿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도움님들은 방법만 안내해준다. 혼자서 내 삶을 돌아보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기억들마저 방법대로만 하면 아주 쉽게 훌훌 떨쳐 버릴 수 있으니 굉장히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직면, 인정할 용기는 필요하다)


이것은 치유에 있어서 무슨 방법이 더 낫다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다. 내담자를 치유해주지만 정작 자신을 치유하지는 못하는, 상담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명상을 많이 한다. 마음수련 명상을 끝까지 한 상담전문가들은 전보다 내담자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내가 미친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에게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나도 분명히 화낼 일이 아닌 것을 아는데, 화를 내고 있는 나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무의식이 나를 집어삼켜 버릴 때가 더 많았다. 나(이성)는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도 나(무의식)였다.


우리는 그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 그래도 나는 이것이 나의 감정이고, 내가 감정형이라서 이성이 힘을 못 쓰는 줄 알았는데, 마음수련 명상으로 산 삶의 기억된 생각을 다 버리고 보니까 나는 꽤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정에 휩쓸리는 게 아닌,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의식은 아이, 이성은 어른에 가까운 것 같다. 어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아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달래주어야 한다. 아이가 존중 받을 때, 오히려 아이는 어른을 고분고분 따른다. 이성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이다.


감정의 중요성은 이미 뇌과학자들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내 이야기들과 내 생각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나를 엉뚱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이지만 남들과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담아만 두었던 이야기들을 브런치에 쓰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나마 가깝다고 여겼던 사람들과는 나눈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공감 받고 지지 받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공감하지 않는 누군가가 존재하듯, 공감하는 누군가 역시 존재할 것을 알기에 내 생각을 거침 없이 글로 옮기고 있다.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 미친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미쳤거나 미쳐야 한다.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 낱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다.


<나의 조각>에서 내가 감명 깊게 보았다고 소개한 영화 <쿵푸팬더3>의 주인공 푸는 모든 동료들에게 각자에 맞는 방법으로 훈련을 시켜주었다. 독특하거나 보잘 것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팬더도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으며,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가 강요 받는 수많은 정상적인 것들, 똑같은 학교, 똑같은 교과서, 똑같은 수업,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 똑같은 결과, 똑같은 진로, ... 미치지 않고서는 삶을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답게 사는 것이 미친 것이라면 나는 그럴 것이다.


미친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름이 틀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미친 줄은 모르고, 미칠 줄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한테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틀림 없이 틀린 것이다.


이미지 출처- <쿵푸팬더3> 네이버 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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