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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Sep 30. 2020

일인칭 교사 시점

책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실린 글

작심구일이었던 1일1그림


지난 7월, 비록 구매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저자로 이름을 올린 첫번째 책이 생겼다. 이 책에는 지난 6랜선 글쓰기 클럽활동에 참여한 마흔 명 가까이 되는 글쓴이들의 글이 두 편씩 담겨 있다. 원격수업으로 인해 죽어가던 중, 나의 돌파구가 되어준 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일주일에 두 편씩 써 내기 쉽지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나의 글 가운데 하나를 옮겨 본다. 당시 '코로나로 인한 변화'를 주제로 쓴 일기이다.




코로나 이전의 학교

  교문을 들어서며 마주치는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잠시 걸음을 늦춘다. 아침은 먹었어? 네. 교실 밖에서는 아이들의 대답이 더 짧다. 수업 때 보자! 웃으며 인사하고 멀어진다. 일찍 도착한 이유는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걷거나 맨발로 신나게 달린다. 6개월을 쉬고 복직했는데 맨발 걷기로 학교 풍경이 많이 달라져 놀라웠다. 나도 더 건강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걸으러 나가는 선생님 중에 내가 가장 젊다. 체력은 제일 안 좋아서 오래 걷지는 못하고 항상 다른 선생님들보다 먼저 들어온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맨발로 걷고 나면 신기하게도 하루를 버티는 활력과 힘이 생긴다.

  영어 과목은 주로 역동적인 활동으로 수업을 구성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활동지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만나고, 열심히 묻고 답하느라 교실이 시끌시끌하다. 나도 아이들 틈에 들어가 혼자 남은 아이의 상대역을 한다. 반마다 40분 수업이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쉬는 시간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그사이 다른 반 아이들이 일찍 도착해서 문 앞에 서 있기라도 하면 더 정신없이 헤어지고, 또 맞이한다. 복도는 언제나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수업이 마치는 시간은 2시 30분이다. 아이들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떨어진 연필을 줍고, 책상의 열을 맞춘다. 깨끗하게 닦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책상은 또 시커멓다. 사고 없이 무탈한 하루를 보낸 것에 감사하며 오늘 수업을 되돌아보는 기록을 남기고 또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그러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 배고픔을 못 이기고 퇴근한다. 서로의 퇴근을 재촉하는 사이인 같은 층 선배 선생님 교실에 들러 인사를 하고 먼저 학교를 벗어난다.

(2019년 10월의 어느 날을 떠올려 씀. 그리고 아래는 2020년 5월 28일의 일기)


코로나 시기의 등교 

  올해는 작은 학교로 와서 업무가 훨씬 많아졌지만, 코로나로 인해 일부가 미뤄지거나 취소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석 달째 이어지던 학교의 적막함을 깨는 날이었다. 열 명 남짓한 일부 인원이긴 하지만 1, 2학년 학생들이 순차 등교를 시작했다. 당연하고도 평범했던 일상들이 사라진 학교에서 일상을 회복하려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중앙현관 앞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빨간 고깔이 서 있다. 정해진 시간대에 등교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낀 채 고깔 옆에 한 명씩 서서 안내를 받으며 순서대로 입장한다. 발열 검사와 손 소독을 하고 나면 학년별 지정경로로, 바닥에 붙은 적정 간격 스티커를 보며 교실로 이동한다. 계단에는 거리 두어 두 명만, 복도에서 대화 금지, 우측통행 등의 안내 문구를 코팅해서 붙이느라 선생님들은 바빴다. 나는 교무실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올라간다.

  1, 2교시 미술 수업을 위해 5학년 교실로 가는 길에, 환기를 위해 활짝 열린 문틈으로 책상을 닦고 있는 2학년 학생들이 보인다. 5학년 교실은 아직 비어있다. 외로운 섬처럼 간격을 두고 혼자 놓인 책상들이 숨을 죽이고 학생들을 기다린다. 듀얼 모니터 앞에서 담임선생님이 조례로 하루를 열고, 출석을 확인한 후 자리를 비켜주신다. 나는 바둑판 모양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얼굴들을 바라보며 오늘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 묻는다. 아이들은 오늘이 수요일이라 수업이 가장 적고 일찍 마쳐서 기분이 좋다며 해맑게 답한다. 얼굴 아래에 이름이 나오니까 모든 학생의 이름을 실수하지 않고 불러줄 수 있다.
 
코로나 시기의 수업
  나는 2학년 수학, 3~4학년 영어, 3~6학년 미술로 일주일에 19시간의 수업을 맡았다. 2학년 수업은 EBS로 대체하더라도 원격수업으로 매주 열 차시의 다른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매일 새벽까지 일하다가 결국은 몸에 탈이 났다. 동영상 제작에 서툰 것도 문제였지만 온라인 수업이라도 어떻게든 나의 철학을 담고 싶고 학생들의 삶과 관련된 제재로 구성하고 싶어 무리했다. 3월부터 재택근무 환경을 갖추면서 직장과 집의 경계가 사라졌고, 나는 여전히 침대로 퇴근한다. 공들인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이 없어서 허무하고, 학생들이 영상을 제대로 보는지조차 확인이 안 되니 답답했다. 그러다 2주 전부터 고학년 미술 수업은 쌍방향으로 진행했다.

  지난주 다른 학년 수업 때는 딴짓하지 말라는 꾸중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함께 등장해 인사하는 어머니도 계셨다. 매 차시가 공개수업이나 다름없으니 부담이 더 크다.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과제로 내면 제출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서 수업 중에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기다렸더니 어느새 마칠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세 시간 째 이어지는 수업에 지쳤을까 봐 교무부장님이 갑자기 나타나 생수 한 통을 챙겨준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주는 동료 선생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비록 일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항상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면서 수업에 대한 고민도 나눈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에게도 코로나는 처음이다. 막막하지만, 그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수 없기에 더 열성을 다한다. 나는 원격수업이 주는 장점을 살려 학생들의 삶과 배움을 연결하고 싶어서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엇이든 함께해 보자고 동료 선생님들께 말한다.

코로나 시기의 점심
  잠시 숨을 돌리니 어느새 12시 20분, 동료 선생님과 함께 급식실로 간다. 어제 미리 시뮬레이션하며 연습한 대로 간격을 띄우고 대화를 삼간다. 입구에서 식판과 함께, 수저가 담긴 흰 봉투를 집어 든다. 하얀 칸막이로 자리를 구분해 놓은 탁자에서 한 칸씩 띄워 지정된 자리에 앉고 대화도 금지다. 여태 급식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 학교에서 먹는 첫 급식인데,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도시락보다는 훨씬 낫다.
 
코로나 시기의 수업 준비

  내일은 4학년 쌍방향 수업을 하는 날이다. 학급 플랫폼에 미리 수업 안내를 올린다. 가정에 배부해야 하는 다음 주 주간학습계획안을 작성하는데, 음악을 가르치는 후배 선생님이 미술과 융합할 수업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며 제안하러 온다. 즐겁게 예시작품까지 그리고 나니 퇴근 시간이 조금 넘는다. 발열 검사를 하러 교무실에 들른다. 나는 교무부장님이 퇴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일찍 퇴근하시길 바란다며 응원을 보내고 먼저 학교를 벗어난다.

  이번 주는 1, 2학년, 다음 주는 3, 4학년이 등교를 시작하고, 그다음 주부터 전교생이 매일 등교한다.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상호작용이 그립기는 하지만 대화와 접촉이 금지되는 일방향 수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원격수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 선생님들은 대면 수업을 하면서,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원격수업도 제공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더 많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일이 두렵다. 아이들도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 학생들이 학교에 와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안전과 아이들 마음을 회복시킬 방법을 고민하며 퇴근 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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