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이는 자는 줄도 모른다
[다음 오픈국어사전] 잠만보 : 포켓몬스터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로, 잠이 많거나 수업시간에 조는 아이들을 말함.
[국어사전] 각성 : 깨어나 정신을 차림.
(ㅋㅋㅋ) 시작부터 웃음이 난다.
...
꾸벅-
꾸벅-
꾸ㅂ..
"?!"
두리번 두리번
여긴 교실, 나는 학생. 수업이 한창이다.
분명히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 공책에는 꼬불꼬불 실지렁이들만 가득하다. 괜히 열심히 듣고 있던 짝꿍 탓을 한다.
"야, 좀 깨워주지!"
"흔들어 깨웠는데도 자놓고는."
헐..........
잠든 이는 깨워도 깨우는 줄 모른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원래 잠도 많았고 수업내용을 이해 못하니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계속 졸음이 쏟아졌었다. 나도 열심히 듣고 따라가고 싶지만 못 알아들으니까 답답하고 지루했다. 칠판 글자 보고 그리기 정말 재미 없다. 뭐라도 공책에 남아 있어야 그래도 공부한 것 같으니까 열심히 보고 그렸다.
부족한 잠을 쉬는 시간에 보충해야지 했으나 잠이란 녀석은 쉬는 시간만 되면 달아났다가 어김없이 수업시간이 되면 또 찾아왔다. 졸리면 뒤에서 서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장탁도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서서 자는 스킬까지 습득하였다.
평소와 다름 없이, 열심히 듣다가 또 못 따라가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나를 깨우더니 복도로 쫓아내셨다.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는데 적지 않게 당황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몰라서 그런 건데, 차마 입도 떨어지지 않았고 눈물만 계속 났다.
쉬는 시간에 불려 가서 꾸중을 듣고 다음부터는 정신을 차리기로 약속했다.
그 뒤부터 그 선생님 시간에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수시로 내 자리에 와서 내가 막히는 부분을 잘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래서 성적도 오르기 시작했다.
잠에만 빠지지 않고 정신을 차리니까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졸다 보면 내가 졸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리고 자다가 깨서 교실을 두리번 거렸을 때 가끔은 다 함께 자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서야 누가 자고 있고 누가 깨어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자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도 모르고 자는 사람도 모르고, 깨어 있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도 알고 자고 있는 사람도 안다.
우리가 깨어나서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다.
나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을 때는 내가 자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 나만의 세상을 깨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 보니까, 잠을 깬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자는 것이 익숙하고 너무 좋아서 다시 쏙 들어가기도 했지만, 완전히 깨어 보니 깨어 있는 삶이 훨씬 더 좋다. (글 <자기비하의 오류> 참고)
삶을 즐기려면, 잠에서 깨야 한다. 누가 깨워줘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진 우리. 왜 진작 안 깨웠냐고 탓할 것도 없이 내가 그냥 깨면 된다.
비록 졸음이 쏟아질 만큼 답답하고 고단하고 지루한 삶이지만, 일단 잠에서 깨어나야 움직일 수 있고 변할 수 있고 활기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잠만 자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꿈인지 생시인지는 잠에서 깨어 보아야 안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도, 불행한 꿈을 꾸는 사람도, 꿈 깨면 꿈인 것은 다 똑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오직 잠에서 깨지 못한 것만이 통탄의 눈물을 흘릴 일이지만, 잠든 사람은 자기가 자는 줄도 모른다.
실컷 깨워준 친구한테 "나 안 잤는데?"라고 할 때도 많았다. 나는 진짜 내가 자고 있었는 줄 몰랐다. ㅠㅠ 우리 모두 각성합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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