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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Mar 24. 2016

반말울렁증 극복

마음수련 명상 효과 - 인간관계

그림 - 김주희 작가님


연수에서 대학교 과 후배들을 만났는데, 거의 졸업 이후에 처음 만나는 거였다. 나는 내 코가 석 자여서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좋은 선배가 아니었다. 친하게 못 지냈던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 굉장히 반가웠다.


우리 과는 분위기도 좋고 선후배 관계가 돈독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려움이 많았다. 다름 아닌 반말울렁증 때문에. 단어 하나 Make 했다, "반말울렁증." 이것을 극복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반말울렁증 증상 첫번째, 내가 하는 반말을 용납하지 못했다. 나는 나보다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말을 붙이기도 힘드니까 내가 감히 반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나마 대학 동기들은 편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친오빠 말고 "오빠"라고 자주 부르는 사람으로 동기 오빠들이 최초였을 정도? 주위에 오빠도 없었거니와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었다. 예의를 지키려고 애쓴 나머지 실수로 반말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혼자서 안절부절했다.


반말울렁증 증상 두번째, 나에게 하는 반말이 달갑지 않았다. 내가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들 대하는 것을 어렵게 느꼈다 보니 누가 나를 쉽게 대하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참...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 딱 맞다. 지금 생각하면 나만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 같다. 누가 초면에 반말을 좀 하면 어떻노. 그것을 "무시"라고 받아들이는 내 심보가 고약했다.


반말울렁증 증상 세번째, 막연한 반말 거부 반응.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은 영어 선생님한테 "Hello" 하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개중에는 어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을 장난처럼 여기는 아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지켜보는 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고 해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영어=반말'로 착각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따지고 보면 '반말=무시'도 아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 있으면 반말을 해도 충분히 예의를 차릴 수 있다. 더구나 친근함이 있으니까 정겹고 좋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반말에 관대하지 못했다. 나를 버릇없다고 생각할 것 같고, 또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그런 생각들 때문에 반말울렁증이 심각했다.


예의와 친분, 그 경계의 모호함에서 나는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그 반말울렁증이 나의 "권위의식"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꼰대 이해하기>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내가 바로 꼰대였다"는 깨달음이었다. 누구도 나를 무시한 적 없고 예의를 차리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도, 나는 나만의 틀을 세워두고 나만의 예의를 차리고 나를 지키느라 그렇게 벽이 두터웠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내가 전혀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는 별개로, 내 마음에 권위의식이 있기 때문에 권위적인 누군가를 혐오했었던 것이라는 이야기다. 세상은 내 마음의 거울이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던, 원인이 되는 내 살아온 삶에 기억된 생각들을 죄다 빼기(-)한 지금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편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나에게 반말을 하건 말건, 나를 무시한다고 여기고 속상해지지 않으며 상대를 편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반말을 더 쉽게 한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누군가가 나를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당신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고 있다.


이런 증상은 나에게만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반말울렁증 특효약은 마음수련 마음빼기 명상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수련 명상을 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느끼는 까닭은 권위의식을 버리고 나이에 관계 없이 유연성 있는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아무리 많은 분과도 재미있게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위 아래가 있어서 하는 존중이라기보다는 마땅히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에 가깝다. 나이 어린 사람을 향해서도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것이다. 아이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에게 존중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른이 먼저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수련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돌아본 만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겪는 변화에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방해하던 반말울렁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미운 이, 고운 이도 없다. 예의와 친분, 이제는 그 경계의 모호함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 둘이 따로가 아니었기에! : )


친하게 지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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