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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Apr 12. 2016

마음과 돈의 관계

돈과 행복이 무관하지 않은 이유

그림 - 김주희 작가님의 <자유>


돈과 행복이 무관하다고?


돈과 행복에 관한 논의는 많이 있어 왔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며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 말이 있는 자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 때도 있었다. 정말 돈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존재하고 돈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돈이 많다고 더 행복하지는 않지만, 생계 유지에 필요한 만큼의 돈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과연 돈이 없어서 밥을 굶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할 수 있을까? 추위를 이길 옷과 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할 수 있을까? "돈"이 없어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 없다. 더구나 그 가난이 그들의 선택인 양 치부하는 것은 정말 너무도 가혹한 처사다. 돈과 행복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 만드는 마음 세계


내 불행에도 돈이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결코 우리 부모님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 우리가 가난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가난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 나는 우리 집의 가난이 부끄러웠다. 다른 아이들은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일상에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에게 가난은 내가 가진 '다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내면에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높은 곳만 바라보고 욕심내며 더 가지지 못하는 것을 슬퍼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한 없이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내 처지를 한탄하기만 했었다. 그들 각자가 가진 나름의 고충 따위는 내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원래 자기가 살아온 삶과 자신이 경험한 세계밖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돈에 대한 마음은 상대적이다.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라 선행학습도 전혀 하지 않은 내가 괜히 얼떨결에 내 주제에 맞지도 않는 특목고에 진학을 해서 시달려야 했던 스트레스는 주로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성적에 대한 열등감도 컸지만 좀더 근본적인 문제였던 경제적 환경에 대한 열등감이 훨씬 더 컸다. 나는 그런 열등감으로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 했던 일이 얼마나 쓸모 없는 일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았다.


나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 부러웠던 사람들도 자신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만큼이라도 살면 정말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들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은 다 똑같구나. 내가 아무리 부러워 한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아무리 자신보다 더 못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은 언제나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굶주려 있구나.



돈에 대한 마음이 행복을 결정한다.


마음의 상대성을 알고 나니 그동안 돈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겼던 시간이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마음수련 명상으로 나를 돌아보니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돈의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돈에 대한 내 마음의 크기라는 것을 알았다. 돈에 대한 마음이 크면 클수록 돈에 의해 불행해질 가능성도 커진다. 말 그대로 돈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마음이 작으면 작을수록 돈에 상관 없이 행복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돈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생존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의 돈이 있다는 전제 하에는, 돈이 행복과 무관하다는 말은 참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마음의 문제다. 아무래도 가진 자가 행복에 더 유리한 까닭은, 가지지 못한 자가 갖는 집착이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마음수련 명상을 할 때, 돈도 없으면서 '돈(=돈에 대한 마음)'을 버리느라 애를 먹었다. 돈이 없을수록 돈에 대한 마음이 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난은 불행의 씨앗이다. 돈이 많다고 더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생존에 직결되기 때문에 돈과 행복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초생활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수련 명상도 참 쉽게 하던데, 나는 명상 하나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첫째로는 내적으로 원래 생각이 많고 우울증도 앓아서 명상을 하는 동안에도 그것들을 오롯이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둘째로는 외적으로 비용이 부담이 되었다. 내 마음을 돌아보니 이 또한 결국은 내적인 문제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내 무의식을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뿌리 뽑지 않으면 언젠가 또 올라와서 나를 힘들게 할 내 마음의 실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기가 생겼다. 도망치기 싫었다. 마치 사람이 되려고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견뎌낸 곰처럼, 나는 꾸준하고 성실하게 나를 돌아보고 돌아본 마음을 모조리 빼기(-)했다.


방학 때마다 개설되는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는 7박8일로 진행되는 합숙연수여서 비용이 24만 원이나 된다. 구두쇠인 나는 도저히 그 돈이 아까워 마음수련을 안 할 뻔했었다. 그게 벌써 2년 전인데, 교사의 힐링을 위한 에듀힐링 연수로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가 포함되어 있어서 지역 교육청에서 연수비를 지원해준 덕분에 연수를 신청할 마음을 먹었었다. 나는 복이 아주 많았다. 공짜로 마음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마음수련 지역센터 한 달 회비 17만원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따지고 보면 한 회기 당 몇 만원씩 하는 다른 심리치료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이었다. 매일 2시간씩 20일만 가도 시간당 5천원이 안 되는 비용이라니, 심리치료가 그림에 떡이었던 나에게는 거저였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런 계산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기에 마음수련원의 저렴한 비용 정책에 굉장히 감사했다.

(그래서 이제 와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한 게 되도록 카드보다는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다. 이건 솔직히 다른 분들께도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이다. 수수료가 조금이라도 더 쓸모 있는 데 쓰일 수 있도록.)


다른 곳에서 지출을 줄였을지언정 결과적으로 한 달에 17만원을 고정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만큼의 여유가 있었던 덕분에 나는 마음수련 명상을 할 수 있었고, 지금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과연 돈과 행복이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돈이 많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고 말할 수 있다. 결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행복해지는 데는 분명히 돈이 어느 정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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