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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배기의 예지력

  손주는 참 사랑스럽다.

처음 영어를 공부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여 스윗, 허니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하다 생각했었다. 사람이 어떻게 달콤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손주를 보고 나니 이 말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참으로 적절하다 싶다. 손주의 존재가 정말 달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손주를 생각하면 심장이 확 열리면서 자비와 사랑의 감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도 한다. 


  이렇듯 사랑스럽고 예쁜손주가 태어나서 거의 만 세살이 되도록 서울에서 많이 떨어진 지방에서 살았으니 얼마나 손주가 보고 싶었겠는가! 나는가끔씩 손주를 보면서 며느리가 카톡으로 보내주는 손주사진과 동영상으로 손주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러던 차에 지구촌에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구에 살던 아들은 대구가 코로나 온상지인 거처럼 여겨질 즈음에 코로나를 피해 가족을 데리고 내가 사는 홍천에 와서 3,4월 두 달을 보내게 되었다. 마침 직업상에 변동이 생겨서 두 달정도의 여유가 생긴 터라 내린 결정이었다. 코로나는 심히 껄끄러운 불청객이지만 어쨋거나 코로나덕(?)에 아들네와 두달이라는 감사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마침 내가 사는 동네에 분양이 안된 전원주택 몇채가 있었고 이곳을 펜션삼아 머물렀는데 나의 집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의 거리이다.     

  

  자! 이렇게 되니 이제 매일같이 손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보고싶고 만지고 싶던 그 사랑스러운 손주를...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 할 일을 간단히 하고는 매일 손주를 데리고 놀았다. 녀석이 할머니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해서 내 집에 데리고 와서 놀았다.     

  

  봄날!

손주 손을 잡고 천천히 시골길을 걸어 녀석이 머무는 펜션에서 내 집까지 걸어올 때의 평화가 너무나 좋았다. 나는 '참 좋다'를 연발했고 때로는 날씨가 너무 화창하면 오늘 날씨가 참 좋다. 하늘이 파랐다고 하기도 했다. 가끔은 평소 가만히 듣고 있던 이제 겨우 30개월 정도 된 녀석이 먼저 “오늘 날씨가 참 좋지?” 라며 할머니를 공감하였다.     

  

  집에 와서는 녀석이 좋아하는 놀이를 하며 놀고 집가까이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이소도 타고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탔다. 때로는 녀석보다 두어살 많은 친구와 학교운동장에서 놀기도 했다. 그 때의 저와 잘 놀아주는 친구(!)와 노는 놀이에 대한 녀석의 진지한 열성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해서 매일매일 서너시간을 놀았다. 단순하지만 다양한 놀이를 녀석이 계속 시도하면 함께 놀아주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녀석이 길에서 돌맹이를 주워서 “엄마갖다 줄거야” 하길래 “엄마에게는 돌맹이를 주는 게 아니야. 꽃을 주는 것이야” 라고 알려주었다. 녀석이 “그예?” 하길래 “엉 누가 엄마에게 돌맹이를 준데 꽃을 주어야지” 했다. 그랬더니 며칠후 즈 엄마가 아들에게 꽃을 받았다고 감격해서 자랑을 하였다. 할머니 말을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 나에게도 두어차례 꽃을 주었다. 길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민들레를 꺽어서...풉.. 이렇게 종일을 놀다보면 할머니 집에서 제 거처로 가는 밭두렁에서 잠시 앉아 쉬다가 안긴 채로 잠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가는 것이 아쉬워 아들네가 홍천에 머물 수 있는 날자를 꼽으면서 매일 매일을 오로지 녀석과 노는 데만 집중하였다. 체력이 많이 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손주가 가고나면 많이 못 논거, 좀더 녀석에게 집중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거 같아서 어떻게 해서든 녀석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애썻다.     

  

  그리하여 이제 두 달의 달달한 시간이 다 지나가고 녀석이 대구 제집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그날도 여늬 날과 다름없이 녀석과 오후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녀석을 펜션 제 거처로 데려다 주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녀석이 주차장에 주차해 있는 할아버지 차를 보고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 아쉬워하면서 


"하부지차야 안녕, 하부지차야 안녕"

을 외쳐대는 것이 아닌가!


  길을 가면서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면서 계속해서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할아버지 차를 좋아하고 할아버지 차를 타고 싶어하기도 해서 가끔씩 조심스럽게(할아버지 차에는 즈 엄마차에 있는 베이비 시트가 없어서) 태우기도 했고 주차해 있는 할아버지 차를 장난감처럼 생각하고 나름의 놀이를 만들어내서 놀기도 했었다.


  하지만 평소와 좀 다르게 너무아쉬워해서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곧 녀석이 홍천을 떠날 생각을 하니.     


  그리고는 펜션으로 와서 즈 엄마에게 녀석을 건네고 돌아서니 녀석이 할머니 가는 것 보겠다고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흔들고 빠이빠이하면서 펜션 언덕 길(펜션이 언덕 위에 있었다.)을 내려오는데 녀석이 할머니 가는 거 더 잘 보겠다고 즈 엄마를 보채서 나의 뒤를 따라왔다. 나는 집에 들어가라고 손짓을 계속 하고 언덕을 다 내려와 평지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저어기 언덕 위에서 엄마에게 안긴 녀석이 할머니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할머니 안녕!"을 소리쳤다. 아까 할아버지 차와도 작별을 찐하게 하더니 이제는 할머니와의 하루에 대한 작별을 평상시와는 다르게 찐하고 짠하게 하는 것이, 녀석도 뭔가 아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홍천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마음이 울적했다.

아뭏튼 그렇게 오래오래 할머니가는 길을 지켜보는 것으로 참으로 애틋하게 그 날 녀석과의 시간은 마무리되었다.


  이제 이삼일 있으면 아들네가 대구로 돌아갈 날이다.

마지막 남은 날을 잘 보내기 위해  아들네는 홍천 여기저기를 코로나를 피해서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즐기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녀석은 이제 더 이상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랑 단 둘이서 종일 놀 일이 없어졌다.


  그 날이 이번 홍천 방문에서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랑 단 둘이 종일 노는 마지막 날이 된 것이다.

어쩌면 할머니랑 그렇게 찐하게 긴시간을 단 둘이 보내는 마지막 날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끊임없이 자라고 있고 영유아 시절은 한번 뿐이니까.     

  

  그래서 녀석은 그렇게나 아쉬워했던 것일까? 

이제 할머니와의 시간을 추억으로 남기려고?

녀석은 계속 성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므로?

자신의 성장기의 한때를 매듭짓느라고?

할아버지 차에게 애틋이 안녕를 고하고 할머니에게 오래오래 빠이빠이를 하는 등 나름의 리츄얼을 한 것일까?

할머니 집에서 놀던 즐거운 날들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유아기의 소중한 추억으로

그렇게 아름답게 매듭짓고 시간 저 뒤편 영원에게 넘긴 것일까?     

  

  그 날 이후로 녀석은 더 이상 할머니 집에 가겠다는 말도 없이 (평소에는 늘 할머니집에 가겠다고 졸라대였다.) 이삼일을 잘 있다가 대구 제집으로 쿨하게 갔다. 이렇다 할 미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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