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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an 19. 2020

31살, 나 사랑하기

목표 없는 삶을 응원하며.

벌써 2020년이 된 지 한 달이 좀 안된 시점에서 이런 글을 올리자니 웃음이 납니다. 남들보다 느린 건 알았지만 이렇게 한 달이나 늦게 19년을 정리할 줄이야.


저는 19년이 좀 많이 힘들었습니다. 같이 창업한 동료가 사기를 쳐서 돈 받아내느라 마음고생도 꽤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밑바닥을 목격하는 게 사실 고통스러웠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돌아가셨지요. 병원과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할 참입니다. 저는 간혹 살아있는 게 죄스러울 때가 있어요. 행복한 날은 특히. 나란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하는 죄책감이 들고요.


2019년이 지나간 것이 꿈만 같아요.


정신없는 와중에도 취업을 무사히 해냈고 엄마와 미국도 갔다 왔어요. 덕분에 카드 할부 값을 아직도 갚고 있지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멸치 쌈밥 같이 먹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빠와 멸치 쌈밥은커녕 밥 한 끼 제대로 안 먹었다는 후회를 엄마와 또 반복하는 것보다야 나으니까요.


31살이 되어 지난 30년을 뒤돌아 보니, 저는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산 거 같아요. 해외취업도 해봤고 그 덕에 독립해서 혼자 살아 봤고 혼자 유럽 여행도 했고 스타트업 취업도 해보고 창업도 해봤고요.


언제 죽어도 후회는 없을 듯합니다. 12~1월에 걸쳐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애정표현도 최선을 다했고, 생명보험도 들었고 가족한테 사랑한다고 이야기도 열심히 했고요. 어제 마지막 친구팀에게 선물을 하고 나니 이제야 19년 정리한 기분이에요.


저는 당분간 소위 타인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꿈이나 목표 없이 살아볼 작정이어요. 굳이 목표를 만들자면 디스크 완치하기나 직장에 적응하기 정도랄까요. 이전의 목표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소극적인 목표들입니다.


그런 저라도, 목표도 없고 꿈도 없는 저를 그냥 사랑하는 게  올해 버킷 리스트입니다. 유일하고 중요한 목표죠. 올해 성공하고 나면 더더더 풍성한 삶을 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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