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를 몰라도 팀장을 할 수 있다는 착각
신뢰는 숫자에서 나온다
'시간이 없어서 xx를 못한다'는 말이 얼마나 구차한 핑계처럼 들리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만...
정말로...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내 생활을 지탱할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전화받고 메일 쓰고 무언가를 정리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면 저녁 5시, 6시다.
내가 온전히 해야 하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하고 당연히 밤까지 일하는 나날이 계속된다.
지난주 새벽 5시에 입국한 날부터 금요일까지 새벽 2시까지 일했다.
이제 주말 이틀을 쉬어도 뇌가 다시 잘 안 돌아간다.
사실 오늘 노트북을 연 이유도 일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못 하겠어서 고민 끝에 브런치를 열었다.
이런 시기가 벌써 올해만 세 번째다.
소소하게 힘든 시기가 아니라 터질 듯한 분노에 심리 상담을 찾아갈 정도로 힘든 시기가 세 번째다.
밥 먹을 힘이 없어서 점심때 카페에서 울며 일하다 다시 일하러 들어가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회사 성장통이 원래 이 정도인 건가? 그래서 이 성장통 끝에는 희망이 있나? 부귀영화가 있어? 이게 정상은 아닌 거 같은데 왜지? 왤까?
내가 추정한 원인은, 실무를 모르는 무지 그리고 모르지만 어쩌라고, 까라면 까 정신이다.
C레벨들은 실무자가 무엇을 어떻게 진행시키는지 잘 모르고, 모르니 본인들이 선택하는 A가 뒷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걸 바꾸는 리드타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Timeline은 그대로 두고 B에서 A로 바꾼 뒤 그 시간 안에 해내라고 갈아내니 다들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게 3번째 반복될 때까지 몰랐다니 나도 참 아둔하고 어리석다.
그래, 회사가 바쁜 시기가 있는 건 당연하지. 일이 없어서 노느니 바쁜 게 낫지라고 생각하며 올해 내내 버텼는데 이제 허무하다 못해 아프다.
왜냐면 바뀌지 않으니까.
갑작스러운 변화, C 레벨 간의 불분명한 의사소통, 각 팀에서 리딩 하고 싶은 방향이 다를 때 그 누구하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환경.
이번에 확신했다. 아, 이건 사람이 더 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구나.
안 바뀔 거다.
이건 사람이 더 들어와서 내 일을 가져가더라도 안 바뀔 거다.
그냥 내가 갈리냐, 나와 기존 동료가 갈리냐, 나와 기존 동료와 새로 합류한 동료가 함께 갈리냐의 차이다.
바뀐다고, 바꿀 거라고 입 터는 저 말들에 지친 지 오래다.
그래서 언제 바뀌는데? 얼마큼 바꿀 건데? 몇 명이 더 오고 무엇을 나눌 건데?
나보고 숫자로 임팩트를 내라며. 그러면 경영진도 숫자로 믿음을 내놔라.
실무자 도망갈까 봐 전전긍긍하지 말고 도망가지 않는 경영 능력을 갖춰내.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