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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allim Mar 31. 2022

살림의 딜레마

매일 하고 & 하고 싶지 않은 살림

자꾸 곁눈질할 때가 있다.

욕실 수전에 얼룩, 세면대와 욕조의 물때, 흐트러져 뒤엉킨 머리카락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질 때가 그렇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화장실 문구가 생각난다.


매주 금요일 오전에 나는 웬만하면 욕실 청소를 해치운다.

매번 할 때마다 꾸역꾸역 하는 거 같다.

‘참 이렇게 꾸준히 하기 싫기도 어렵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살림은 숨 쉬듯 매일 해야 하지만 잠시 멈추고 싶을 때가 더러 있다.

반복되는 루틴이 지겨울 때, 뒤돌아서면 금세 어질러진 집안을 볼 때, 내가 아플 때, 혼자만 치우고 사는 것처럼 버거울 때, 돈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등등.

그러나 살기 위해 이내 숨을 내쉬어야 하듯, 살림도 금세 다시 시작하고야 만다.

제아무리 곁눈질을 하고 모른 척 해도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이를 ‘살림의 딜레마’라 생각한다.

매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살림.

딜레마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이럴 때 나는 내 살림을 사사로운 소꿉놀이에 비유해본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 한 편에 모여 모래에 물을 붓고 엄마 몰래 퍼온 고춧가루를 흙탕물에 섞어 찌개를 만들자며 난리법석일 때가 있었다.

조막만한 손으로 더 조막만한 돌멩이를 찾아 주변의 이름 모를 풀과 꽃잎을 찧어 넣고 너는 아빠 나는 엄마 그리고 넌 아가라며 깔깔거리던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마냥 신나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능숙하게 살림을 마주하는 지금의 나와 오버랩되며 설핏 웃음이 난다.

이 순간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으며 마음이 달래진다.

마음이 어루만져지니 이내 살림을 하기 위해 몸도 일으킨다.

다시 나만의 습관대로 움직이며 루틴이라는 근사한 명분을 따라가는 것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하는 살림이지만 꽤나 지속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것 역시 살림이다.

수시로 불쑥불쑥 끼어드는 딜레마가 꽤나 불편하지만 은근슬쩍 넘길 수 있는 나만의 노련함이 있어 다행이다.

운동장 한 편에 쭈그리고 앉아 모래를 더듬으며 소꿉놀이를 하던 내가 이제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딛고 엄마가 되어 일상을 보듬어 간다.

이렇듯 내게 살림은 ‘나를 추억하고 이해하며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17년 차 살림지기로서 소신을 되새기며 살림을 이어간다.

살림 딜레마? 내게 이 정도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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