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여기저기 쑤실 거예요. 어디가 제일 아팠는지 꼭 얘기해 주세요. 가르치는 사람은 그럴 때 희열을 느끼거든요."
발레 '완전 기초반' 수업을 마치며 선생님은 분명 악당처럼 웃고 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처참했다. 고작 스트레칭과 발동작 몇 개 했을 뿐인데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머리카락이 미역처럼 들러붙었고, 튤립 모양 랩스커트는 꽃잎이 흉하게 벌어졌다. 같이 수업 듣는 두 명도 발레를 처음 해본다더니 적잖이 놀란 표정이다. 우리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 구역에서 평화로운 건 오직 선생님뿐이었다.
"발레는 시작해서 3개월을 넘기기가 힘들어요. 갑자기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몸도 아프고, 매번 비슷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니까 지겹거든요. 저도 활달한 성격이라서 처음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올해로 20년째 하고 있어요."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려서일까. 아니면 소원하던 발레를 시작한 첫날이어서일까. 다리는 후들거리는 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머지 두 분도 나처럼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앵무새 세 마리처럼 같은 말을 했다.
"재밌죠?"
"재밌어요."
"재밌네요."
불에 구워진 오징어처럼 이리저리 뒤틀려지던 세 사람은 방금 전 상황은 다 잊은 게 분명했다. 우리는 "재밌다"를 합창하며 다음 시간에 볼 것을 약속했다.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 악당처럼 느껴졌던 선생님 말씀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수강생이 아픈 게 가르치는 사람의 기쁨이라던.
문득 글쓰기할 때 만나는 글동무들이 떠올랐다. 나 역시 글을 쓰면 마음이 아프다는 분들을 만난다. 외면하고 싶고, 잊은 채 살고 싶었던 기억을 직면하기 때문일 것이다. 굳어있던 근육을 쓰면 몸이 아프듯, 굳어진 마음을 글로 쓰면 마음이 아프니까.
지겹다는 점에서 발레와 글쓰기는 닮았다. 요리나 뜨개질을 배우면 쓸모 있는 결과물이 있지만, 글쓰기는 어떤가. 남는 거라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얀 종이에 까만 글자뿐이다. 게다가 마음이 괴로워지기까지 하니 굳이 스스로 재앙을 불러올 필요가. 지금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데. 그렇게 글쓰기와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만 계속 쓰려고 하는 분들을 보면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어 진다. 스트레칭도 처음엔 아프지만, 나중엔 시원하고, 결국엔 안 하면 찌뿌둥해지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렇다. 글쓰기가 얼마나 좋은지 설득하지 말고, 발레 선생님처럼 솔직하게 말해줘야겠다.
"글쓰기는 시작해서 3개월을 넘기기가 힘들어요. 갑자기 외면했던 기억을 떠올리니까 마음도 아프고, 매번 비슷비슷한 과정을 반복하니까 지겹거든요. 저도 활달한 성격이라서 처음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매일 아침 눈뜨면 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