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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Feb 07. 2021

빨간머리앤에게서 배울 점

무한긍정소녀, 현재의 가치를 아는 소녀

누구든 어린 시절 동화로 빨간머리 앤을 읽은 기억은 있을 것이다. 또 만화 빨간머리 앤의 기억 역시 강력하게 남아있다. 만화 속 앤은 앞머리가 삐뚤삐뚤한 빨간 머리에 주근깨 투성이의 소녀로 머리 속에 남아있다.

 이후로 잊혀져가던 앤은 어른이 된 후 다시 소환되었다. 서점에서 빨간머리앤에 관한 책을 꽤 자주 볼 수 있었고 재작년에는 빨간머리앤 전시회도 열려서 다녀왔다. 전시회에는 빨간머리앤과 관련된 서정적인 일러스트가 많아서 꽤나 볼 만했다.

 그리고 얼마 전 골절 수술 받고 집에 갇혀있던 내 눈에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 빨간머리앤(인디고 출판사, 이 출판사 책들은 일러스트가 예뻐서 많이 산다)이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빨간머리 앤을 끝까지 읽진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왜 수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빨간머리앤에게 열광하는지 알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어보니 후반부를 읽지 않은 것 같다는 내 생각은 맞았다. 그리고 후반부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전반부와 분위기가 달라 좀 낯설었다. 후반부에는 앤을 입양한 매튜와 마릴라가 급격히 약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매튜는 전재산을 맡긴 은행의 파산 소식에 원래 안좋은 심장에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마릴라는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충격적이었다 ㅜㅜ) 앤은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를 포기하고 고향에 남아 교사가 되기로 한다.


 전반부에 앤은 예쁘지 않은 말 많은 말광량이 소녀였고 매튜와 마릴라는 앤의 세계에서 아주 큰 기둥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앤은 점점 예쁜 아가씨로 성장해가며 성적도 최우수를 유지한다. 이런 앤의 모습은 전반부의 앤만 기억하는 나에게 다소 낯설었다. 반면 매튜와 마릴라는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다. 마치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 겪게 되는 슬픔을 앤도 겪게 된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그것은 앤의 삶에 슬픔이 찾아오기 전의 마지막 밤이었고 그 차갑고 신성한 손길이 닿고 나면 인생은 다시는 예전과 같아지지 못하는 법이었다."

 앤의 인생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앤을 유난히 예뻐하고 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주고 싶어하던 매튜는 세상을 떠났다. 늘 앤에게 엄하고 무뚝뚝하게 대했으나 마음으로는 앤을 사랑했던 마릴라는 조심하지 않으면 6개월 후 실명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앤이 그토록 사랑한 초록지붕 집을 팔아야 할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에 성적이 가장 우수해 장학금까지 받았던 앤은 대학을 포기하고 고향에 남아 교사로 사는 삶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앤은 전혀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 무렵 앤의 입가엔 미소가 감돌았고 마음은 평온을 되찾았다. 앤은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당당히 마주했고 의무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퀸즈를 졸업할 때 미래는 곧은 길처럼 눈앞에 뻗어있는 듯했어요. 이제 전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그 모퉁이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거예요. 길모퉁이는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아주머니.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하거든요."


 앤은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못 가게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곧은 길처럼 뻗어있는 미래보다는 길모퉁이가 더 매력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맞이한 새로운 현재를 마음을 열고 사랑하기로 결정한다. 그런 그녀 앞에 역시 교사가 된 같은 동네 친구 길버트가 나타나고 둘의 로맨스를 암시하며 소설은 끝난다. 앤의 꿈은 작아졌지만 누구도 앤에게서 행복을 뺏지 못했다. 앤은 말한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안하도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이 왜 그렇게 앤에게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앤은 어린 소녀지만 웬만한 어른보다 훨씬 낫다. 앤은 무한 긍정 소녀이다. 그렇다고 앤이 좋은 환경을 타고났나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앤은 어려서 고아가 되었고 고아원에서 힘들게 자라다가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되었다. 그러나 앤은 전혀 삐딱하거나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아주 밝고 명랑하고 세상을 매우 사랑하며 자신이 처한 현실에 항상 감사한다. 매슈를 처음 만났을 때 기차에 탔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해하는 것 같았으나 상상의 힘으로 즐거운 여행을 했다고 한다. 초록 지붕 집에 온 후로도 언제나 현실에 감사하며 애정을 가진다. 초록 지붕 집을 둘어싼 자연에 이름을 붙이며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쏟아붓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아가 된 현실을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과 소외감에 시달릴 수도 있고 세상을 미워할 수도 있으나 앤은 그러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범한 아이들처럼 부모, 형제와 함께 살지 못하고 입양아로 살아야 하는 현실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으나 앤은 그러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러야 한다면 자신의 현실을 미워하고 왜 나는 좋은 집안 환경을 타고나지 못했을까 하고 현실을 원망할 수 있으나 앤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앤은 자존감이 강하다. 자기 자신으로,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매우 큰 자존감과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이 부자가 부럽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부자라고 자신은 그들 중 하나와 자신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행복은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다. 앤은 마음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자신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바꿔놓는다. 이것이 앤이 가진 힘이다. 앤보다 훨씬 나이먹은 어른이지만 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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