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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Mar 10. 2021

불우한 청년의 시대, 비행운의 세대

-김애란, 서른

얼마  김애란 작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인생'  미국 아마존 선정 ' 달의 ' 소설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존 선정  ' 달의 '  선정된 국내 도서로는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황선미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있다고 한다.

 '두근두근  인생'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는데 아름다우면서도 밀도 높은 완벽한 문장과 참신한 플롯, 재미있는 이야기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점에서 구입했다. 작년에   문학 교과서에 김애란 작가의 단편 '입동'  실린 것을 봤고 다른 교과서에  '두근두근  인생' 시나리오로 실렸다는 소식도 들었다. '바깥은 여름('입동'  수록된 단편집)', '비행운('서른'  수록된 단편집)' 등의 단편 작품집을 통해서도  작가의 천재성은 알고 있었는데 이제 해외에서도 그걸 눈치채기 시작했나보다. 아마 포스트 한강 작가는 김애란 작가이지 않을까, 언젠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비행운'  실린 '서른' 이라는 작품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서른'  개인적으로는 '비행운' 에서 '  골리앗'  함께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물론 나머지 작품들도  좋다. 웬만한 작가들의 단편집을 읽어도 보통  아니면 잘해야  정도만 괜찮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데  작가는   쓴다. 이렇게 쓰려면 뼈를 갈아넣듯 쓰든지, 아니면 타고난 천재든지   하나일 텐데 아무리 봐도 천재인  같다. ㄷㄷ)

 '서른'  편지 형식의 글이다. ''  20살에 노량진의 사임당 독서실에서 같이 지냈던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   독서실이 여성 전용이니 훌륭한 아내, 어머니가 되라고 지었을 텐데 정작  안에는 훌륭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보통의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자들이 많았다고 표현한다. 무엇이 보통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언저리에 금이라도 한번 밟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충남에서 올라온 재수생이었고 언니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서른이  나는 엽서를 통해 언니의 소식을 받고 언니가 8년만에 임용고시에 합격했었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한다.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을 뿐인데 청춘이 가버린  같아 당황스럽다고.


이십대에는 내가  하든 그게  과정인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같은데.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  이렇게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  열심히 살지않은 것은 아니었다. J 불문과에 합격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부족해 휴학과 복학을 번갈아 하다보니 졸업을 7년만에 하게 되었다. 편의점, 카페, 설문지 아르바이트, 서빙, '마루타 알바'  불리는 병원 생동성 시험, 인근 보습학원 강의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았다.   학원 일을  때는 학생들이 자신을 따라주는 것에 보람과 애정을 느끼기도 했다. 면목동에 있는 학원의 학생들은 공부를 못했지만 ''   따랐고 재치와 상상력을 보여주어 ''  웃게 만들기도 했다.

요즘 저는 하얗게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대학을 겨우 졸업한 '' 에게는 천만  가량의 학자금 대출이 쌓여 있었지만 구직 활동을 해도 불문과 출신에 여자이고 나이도 많고 용모도 평범한 ''  뽑아주는 데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온다. 평소   입는 양복을 입고 나온 그는 오리고기를 사주며 자신이 이제  잘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다닌다는 회사는 다단계 회사였다. ''  남자친구의 꼬임으로 거기에 들어가게 된다.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있다고 말하는 오십대 남성의 강의를 들었어요. 너무 빤해서 들을  없는 강연 같죠? 맞아요, 언니. 그런데  빤한  사람 맘을  쥐고 흔들데요? '' 이라는 말을 듣는데 가슴 한쪽이 싸한  찌르르 아픈 것도 같고 좋은 것도 같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그리고 실은 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 했다는  깨달을  있었어요.  그대로 '교과서에 나오는 ' 같은 . 올바르고 아름다운데, 실은 아무도 믿지 않는 말들 말이에요. 너무 옳아서 조금은 종교적으로 보이지요? 그런데 언니, 요즘 같은 세상에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있다는 말만큼 믿고 싶은 교리가  어디 있겠어요.

  ''  자신과 집안 형편, 가족 관계, 성격  겹치는  많은 사람이 고생 끝에 이사급 위치까지 오른 얘기를 듣고 '어쩌면 자신도 저렇게   있을지 모른다'  희망이 생긴다. 아버지가 교통사고에 휘말려 집안 사정은 말이 아니고  ''  사람 죽이는 일만 아니면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해야  정도로 절박했다. '' 그렇게 다단계 회사의 합숙소에 들어간다. 합숙소의 생활 환경은 최악이었는데 공동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은   가까이나 된다고 했다. 거기서 ''  예전의 '대학생' 들은 학생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다단계 판매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인맥을 동원해서 물건을 팔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팔고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 그리고  곳에서 나오기 위해 마침 연락이  학원 제자를 포섭하는 최악의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만다. 담배 냄새를 풍기며 천사 같은 얼굴로 안기곤 했던 학원 제자 혜미는 합숙소에 들어간  힘들다는 연락을 했지만 ''  모두 무시한다. 그리고 얼마   혜미가 엄청난 빚과 파탄  인간관계를  견디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일을 하며 살게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  대답할  있을  같은데. 어쩌다, ,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언니,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마흔의, 환갑의 나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게 될지, 어떤 말을 붙잡고 어떤 믿음을 감당하며 살지 모르겠어요.

  '서른'  수록된 단편집 '비행운'  2012년에 출판되었고 김애란 작가는 80년생이다. 작품 출간 당시 그녀는 33살이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가    궤적대로 남는 구름을 '비행운' 이라고 하는데 '비행운'  '행운이 아니다'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집에서는 중의적 의미로 쓰인다. '비행운'  '행운'  반대말이다.  소설은 누구나 행운을 바라나 오직 비행운만이 허락된  같은 불우한 세대를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어른이', '비혼', '욜로', '소확행'  같은 말이 유행하며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젊은 세대들  많은 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어른이'  머물기를 강요당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쳐도 어른이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번쯤은  보게 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직장 다니며 평범하게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인데 그게 너무 어려운 세대이다. 직장에 진입하기 위한 장벽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높아져서 치열한 전쟁을 치루어야 하고 겨우 들어가도 하늘 높은  모르고 치솟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결혼, 출산 같은 과거라면 자동적으로 하게 되었던 것을 하지 못하거나 한참 늦게 하게 된다.

 우리 세대  많은 이들이 늦게 태어난 것이 이렇게  죄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혼'  자발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결혼도, 아이도 낳을  없는 상황에 따른 것인 경우도 사실은 많다.  '욜로'  '소확행'  안정적인 , 진짜 어른의 삶을 누리지 못하여 반대 급부로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의 성격을  것일 수도 있다. '작은 것이 주는 확실한 행복'  '소확행'  사실은 '작은 ' 밖에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만족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서른'  이러한 불우한 젊은 세대의 현실을 너무나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사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줄거리와 진정성 있는 문체로 드러내고 있다.

  작품은 문학평론가 우찬제로부터 '사회 경제적 문제를 사려 깊은 시선으로 조망하면서 시대의 산문정신을 고뇌한 작가의 진지성이 웅숭깊다', '눈부신 소설적 성취' 라는 극찬을 받았다. 출판된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작품의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시간이 되시면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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