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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Feb 22. 2021

여성의 경제력과 독립적인 삶의 상관관계

영화, 소설 작은 아씨들 2

포스팅 한 번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지난 번 포스팅에 이어 써보겠다.

2. 여성들의 이야기

 작은 아씨들은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은 여성 작가이고 그래서인지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낸 것 같고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감독 그레타 거윅 역시 여성이고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페미니즘적인 성격을 끌어내어 부각시킨 것 같다. 이러한 면이 둘째 조를 통해 많이 드러난다.

소설에서 조는 이렇게 말한다.

"난 아마 어느 누구하고도 결혼하지 않을 거야. 이대로가 행복해. 자유롭게 사는 게 너무 좋아서 세상 어떤 남자를 위해서도 이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하던 조도 결국 어떤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뉴욕에서 만난 프리드리히 교수) 놀랍게도 그와 결혼하게 된다. 둘은 조가 고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아들 둘을 낳고 잘 산다. 소설에서는 페미니즘적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심지어 소박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메그의 모습이 그려진 부분에  '가정은 여자의 최고 행복이다' 같은 멘트가 나와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150년 전의 보수적인 현실 속에서 현실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작가의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반면에 영화 속 조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직설적으로 한다.

"결혼은 소설에서조차 경제적인 거래네요." (이에 대한 남성 편집자의 대답은) "로맨스죠"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외모 뿐 아니라 야심과 재능이 있어요. 전 사람들이 여자에게 사랑이 전부라는 말 하는게 지긋지긋해요."

"제 인생은 제 스스로 만들 거예요"

"차라리 자유로운 노처녀가 돼서 스스로 노를 저어 나가겠어요."

 이런 대사들이 나온다. 당시에 여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고 부유한 친척인 마치 고모는 늘 여자는 결혼을 잘 해야 한다는 충고를 자매들에게 한다. 이러한 마치 고모를 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에이미는 고모와 잘 지낸다. 영화에서 마치 고모는 "여자가 돈을 벌려면 배우나 매춘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 둘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한다. 즉 이러한 이유로 여자는 생존을 위해서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가 "고모는 결혼을 안 하셨잖아요" 라고 하니까 "나는 돈이 많지 않니" 라며 팩폭(?)을 한다. 150년 전이니 여자가 경제 활동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결혼은 사랑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여성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런 현실에서도 조는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려고 결심한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 을 출판해 줄 출판사 편집자는 조가 독신인 것은 말이 안된다고, 누가 독신이 여자가 나오는 책을 보겠냐며 조가 결혼하는 것으로 써달라고 한다.

그 때 조는 말한다.  "결혼은 소설에서조차 경제적인 거래네요." 이에 대해 남성 편집자는 "로맨스죠" 라고 답한다.

즉, 영화 속에서 네 자매와 이야기를 전개하는 조는 정말 조이고 작가 조는 사실은 '작은 아씨들' 의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루이자 메이 올컷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영화는 작가가 조가 독신으로 사는 것으로 썼다가 편집자의 요구로 조를 결혼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담고 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3. 조와 에이미의 미묘한 관계

 작은 아씨들의 영화 감상평을 보면 에이미의 야심이 흥미진진하다, 에이미의 재발견이다 등의 의견이 보이는데 사실 에이미는 딱히 재발견되지 않았다. 영화 속 에이미는 소설 속 에이미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차이가 있다면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로리에게 "그럴 수는 없어! 평생 조 언니의 그림자로 살아왔는데 사랑까지 그럴 수는 없어!" 라는 대사가 소설에는 없다는 점이다. 아마 이런 평을 쓴 사람들은 어린 시절 소설 작은 아씨들을 1부까지 본 것이 아닐까 싶다.(우리나라에 출판된 작은 아씨들은 1부까지가 대부분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나도 작년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2부까지 나온 작은 아씨들을 샀다.)

 조는 메그, 베스와 사이가 매우 좋지만 에이미와는 자주 다툰다. 조의 기질도 강하지만 로리와 함께 보는 연극에 자신을 데려다주지 않았다고 조가 몇 년 동안 쓴 원고를 다 태워버릴 정도로 에이미는 성깔이 장난이 아니다. 조는 베스가 죽어가는 상황에 유럽 여행에 간 에이미를 두고 누구는 늘 화창한 햇빛 속에서 살아가는데 누구는 어둠 속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며 에이미보다 더 노력했는데도 보상은 커녕 실망과 괴로움, 고된 일만 따맣게 됐으니 억울다고 생각한다.(그 전에도 조는 엄마에게 좋은 건 모두 에이미 차지에 저는 남아서 일만 해야 한다고, 불공평하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하고 싶어하며 야망도 크다. 넷 다 10대였던 1부에서 각자의 꿈을 이야기할 때 자매들도 두 사람의 내용이 비슷하다고 한다. 조는 작가로, 에이미는 화가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고 가족도 돕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성장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추구한다.

 에이미는 재능과 천재성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로리에게 "천재적인 화가가 되지 못할 바에는 다른 재능을 갈고 닦아 사교계의 별이 될 거야" 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녀의 재능이란 미모와 센스이다. 그녀는 패션 센스, 남자들을 다루는 센스 모두 훌륭하다.(로리의 친구들에게 그녀의 인기는 매우 높다. 그 중에 한 명은 청혼까지 한다.) 영리한 그녀는 자신의 얄팍한 재능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잣집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정한다. 조와 에이미는 비슷한 야망을 품었으나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에이미의 야망은 부자 남자를 만나겠다는 다른 야망으로 대체된다.

 결국 에이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 언니인 조를 사랑했던 로리를 자신의 남자로 만든 것이다. 로리보다도 부자인 프레드의 청혼을 거절한 후 베스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고 상심해 있는 그녀에게 로리가 찾아와 달래준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된다. 같은 여자가 봐도 에이미의 야망은 다른 의미에서 엄청나다. 보통 남자의 돈을 추구하는 여자들은 다른 것은 포기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남성의 외모라든지, 진정한 사랑이라든지. 그런데 에이미는 이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에이미가 로리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자신의 미적 감각에 흡족한 남편의 외모에 만족했다" 는 표현도 나온다. 에이미는 로리가 재력, 사랑, 외모 모두를 가진 남자, 자신이 원하는 남자임을 알고 그를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그가 자기 언니를 사랑했었는데도.


 이렇게 모두가 부러워하는 영앤리치 커플이 탄생한다. 그리고  나중에 에이미는 로리에게 "가난한 집 딸인 나를 데려와 당신이 공주로 만들어주었다" 고 말한다. (소설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점은 유럽 여행 중인 에이미가 언니 베스가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아프다는 것을 일부러 숨긴 베스를 비롯한 가족의 뜻이 있었긴 하지만 좀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베스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고 로리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거의 바로 단 둘만의 결혼을 하는 부분이다. 언니가 아픈데 유럽을 여행하며 좋아하던 옆집 오빠와 썸을 타고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바로 그 남자와 결혼한다니. 솔직히 우리나라 정서로는 좀 이해가 안 간다. 로맨스에 관대한 서양에서는 안 그런가 보다.

 어쨌든 조를 생각하면 에이미는 다소 얄미운 캐릭터이긴 하다. 조는 여러 모로 에이미의 반대 성향이라 둘은 사사건건 대립한다. 예를 들어 조는 부유하고 인성이 별로인 사람을 냉대하고 가난하고 선량한 사람에게는 상냥하다. 그런 조에게 에이미는 "반대로 대하면 좋았을 텐데" 라고 비아냥거린다.  에이미의 유럽 여행 기회도 사실은 조의 것이었다. 그 계기는 어떤 방문이었는데 그 방문도 가고 싶지 않다던 조를 에이미가 부탁해서 같이 간 자리였다. 거기서 마치 대고모와 캐럴 숙모의 눈에 에이미가 들게 된다. 반대로 조는 그녀들의 눈밖에 나게 된다. 에이미는 사교성이 뛰어나 어딜 가나 인기가 많고 어른들의 비위도 잘 맞춘다. 나중에 유럽 여행을 가게 되는 캐럴 숙모는 그 날, 동행자로 점찍었던 조를 에이미로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그 방문으로 원래 조의 것이었던 유럽 여행 기회는 에이미의 것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을 계기로 원래 조를 사랑했던 로리 역시 에이미의 남편이 된다. 어쩌면 에이미의 자리는 조의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야망이 있고 적극적인 에이미는 꿈꾸던 것을 쟁취한다.

 이후 조는 나이 많고 가난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한다. 그런데 예상 외로 조는 부자가 된다. 까탈스러운 마치 고모가 뜻밖에 조에게 저택을 상속한 것이다. 대저택의 주인이 된 조는 그곳을 학교로 만들고 남편과 같이 소년들을 가르치며 행복하게 산다. 사실 좀 의문이긴 하다. 작가는 조가 왜 소년들만을 위한 학교를 만들게 했는지? 그 당시에 소녀가 학교 생활을 안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이 부분을 영화에서는 소년, 소녀를 위한 학교로 바꾼다.

  한편으로 150년 전 소설이지만 완전히 예전 이야기라고 볼 수 있나 싶기도 했다. '취집' 이라는 말이 유행하지 않는지. "여자는 결혼을 잘 해야 한다" 같은 말이 엄마, 이모에게서 딸, 조카에게로 전해지지 않는지. 여전히 여자보다 남자의 조건이 더 좋은 결혼이 바람직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지.

 작은 아씨들을 보면서 여성의 경제력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삶과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고 이에 대해 일부 과거의 여성들도 요즘 여성들 못지 않은 열망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여성의 경제력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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