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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Jan 20. 2022

애별리고의 잔혹함에 대하여

- 이승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어제 싱어게인 2를 보는데 한동근 가수가 이승환 가수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를 불렀다. 개인적으로는 싱어게인 2가 1에 비해서 좀 실망스러워 계속 딴짓하며 보다가 오랜만에 화면에 집중해서 보겠다 싶었다. 워낙에 명곡이고 절창이기 때문.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 분도 나름 유명하고 노래를 엄청 잘 부르는 건 알겠는데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목이 말라 콜라를 들이켰는데 김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승환 가수의 원곡의 벽이 워낙에 높았기 때문인 듯했다. 원곡의 애절함, 절절함, 감동과 울림,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승환 씨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래를 저렇게 피를 토하듯이, 절망적으로 부를 수 있구나. 누군가를 저렇게까지 피눈물을 흘리듯이 미치도록, 죽을 만큼 그리워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한동근 씨의 노래를 듣다보니 원곡에 대한 갈망만 커져서 유튜브로 이승환 씨의 원곡을 들었다. 다 듣고도 여운이 남아 유튜브 댓글창을 기웃거리다 이 노래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다큐를 보지 않으면 이 노래 후반부의 가슴을 후벼파는 엄청난 절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이 노래는 2006년 방영된 다큐 '너는 내 운명' 을 보고 이승환 씨가 공동 작곡가 황성제 씨와 만든 곡이라고 했다. 다큐 '너는 내 운명' 을 찾아보니 너무 애절한 사연이라 스샷만 봐도 눈물이 났다. 도저히 다큐 전체를 볼 엄두가 안났다. 하지만 블로그와 기사를 찾아서 얻은 정보만으로도 너무나 슬펐다.

https://m.blog.naver.com/windcabinet0/221880965781

https://haruharu88.tistory.com/117

 두 사람은 사회적 시선으로 봤을 때는 사랑을 이루기 힘든 처지였지만 여자분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이 이길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운명이었다. 죽음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가장 잔인무도한 적이다. 죽음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표정도 감정도 당위도 없다. 그래서 더 무섭고 공포스럽다. 남자분은 간암 선고를 받은 여자분을 끝까지 지극하게 간호했지만 결국 그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방송 이후 10년이 지나서 한 인터뷰에서도 그는 독신인 채로,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을 거냐는 질문에 만나지 않겠다고, 션녀의 옷깃이 바위에 스치는 일이 한번 일어난 걸로 감사하다고 했다 한다.


사랑이 잠시 쉬어 간대요

나를 허락한 고마움.

갚지도 못했는데

은혜를 입고 살아 미안한 마음뿐인데

마지막 사랑일거라 확인하며 또 확신해는데

욕심이었나봐요

난 그댈 갖기에도 놓아주기에도 모자라요

우린 어떻게든 무엇이 되어있건

다시 만나 사랑해야 해요

그때까지 다른 이를 사랑하지 마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사랑한단 말 만번도 넘게

백년도 넘게 남았는데

그렇게 운명이죠 우린

악연이라 해도 인연이라 해도 우린..

우린 어떻게든 무엇이 되어있건

다시 만나 사랑해야해요

그때까지 다른 이를 사랑하지 마요

안돼요 안돼요

그대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

간절한 그리움

행복한 거짓말 은밀한 그약속

그 약속을 지켜 줄 내 사랑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그게 너란 말야

너만의 나이길 우리만의 약속

그 약속을 지켜 줄 내 사랑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그게 너란 말야

너만의 나이길 우리만의 약속

그 약속을 지켜 줄 내 사랑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사연을 모르고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당사자들의 변심이 아닌 외부적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한 연인들의 절망이 드러나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연을 알고나니 노래의 가사가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이 노래는 사별에 대한 노래였던 것이다. 살아서는 그 사람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가장 완전하고 잔인한 절망. 어떻게든 무엇이 되어있든 다시 만나 사랑해야 한다는 가사는 이생에 먼 훗날의 가능성이 아닌 죽음 이후의 다음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을 '애별리고' 라고 한다. 이는 불교에서 인생 최대의 고통을 8가지로 규정한 '8고' 중 하나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절절한 사연을 보며 예전에는 살면서 이런 사랑 한 번 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저렇게 고통스럽고 아파야 한다면 안 겪고 싶다고 했다.

 너만을 사랑하고 너만을 기억할 것이라는 것, 오직 너만이 필요하다는 후반부의 피토하는 듯한 절규는 충격 그 자체인데 듣는 이로 하여금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적인 사랑을 경험했기에 절대로 잊을 수 없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것. 그런 존재의 부재를 평생 안고 품고 살아야 하는 고통. 그런 것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승환 씨는 후반부, 마치 목소리를 긁는 듯한 소리로 노래를 불러 마치 절규하는 듯, 피를 토하는 듯 느껴진다)

https://youtu.be/aTHjlRJr-xQ

이 감정을 어디서 느꼈는지 떠올려보니 김소월 시인의 '초혼' 이 떠올랐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 진달래꽃보다 이 시가 더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 사별이 주는 그 단절감이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에는 부르다가 그 자리에서 죽을 것 같은, 선채로 딱딱한 돌이될 것 같은 완전한 절망이 살아 숨쉬는 것 같다. 그 고통이 너무 생생하여 사랑하는 이의 아름이 결국 자기를 죽이는 것 같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우리의 인연이 어쩌면 악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지도.

 이렇게 나란히 보니 어쩌면 이 노래는 김소월의 '초혼' 의 환신처럼 느껴진다. '초혼' 이 노래로 변신한다면 이 노래가 되지 않을까. 잘 만들어진 노래는 문학 작품 못지 않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수 이승환 씨가 좋은 이유는 그의 노래가 단순한 대중성을 넘어서는 예술성을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대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도 모든 것이 조건으로 환원되고 그것이 맞지 않으면 좌절되거나 시작되지조차 못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불륜, 세계 최고 수준의 이혼율을 논하며 도처에서 사랑은 무시받고 부정된다. 하지만 이런 사연을 접하면 사랑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각박한 세상,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숭고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은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는 모쪼록 두 분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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