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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y 20. 2021

바보상자의 진화

유튜브 시청이 현 세대에 가져다준 비판적 사고 저하 문제에 관하여

십 년 전에는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다. 가만히 앉아서 네모난 상자나 쳐다보고 있으면 바보가 될 것이 뻔하다는 어른들의 이유 있는 우려. 그 시절 빨려 들어갈 듯 만화 채널을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2021년이 되어 더욱 작아지고 간편해진 '바보상자'와 함께하고 있다. TV 좀 그만 봐라, 가 스마트폰 그만 해라, 유튜브 좀 그만 봐라, 로 바뀐 지금. 어른이 된 우리는 십 년 전의 나와 닮은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때, 어른들의 우려와 걱정은 무의미했을까?


'영상'이란 매우 효과적인 전달력을 자랑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굉장히 뻔한 소리를 화려한 시청각적 자극으로 내놓는 지루함을 겸비하였다. 영상은 글과 확연히 다르다. 글은 읽겠다고 집어드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내가 읽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갈 일이 없다. 반면 영상은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자고 있더라도, 멍하니 앉아만 있다고 해도 계속 '다음'이 생긴다. 영상의 장점으로 항상 거론되는 것이 그것이다. 시청각적 자극, 편리함. 비지 않는 오디오와 항상 다채로운 색으로 차 있는 작은 화면. 영상은 우선 그런 것이다.


그러한 영상을 현재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유튜브'를 한 번 보자. 과거의 영상매체와 현재의 영상 매체를 비교해보겠다. TV 프로그램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유튜브 시장'이 만들어낸 유행어를 TV에서 재생산하는 데까지 왔다. 이를 뉴미디어와 기존 미디어의 소통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기존 미디어가 뉴미디어를 따라가기 바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뉴미디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유튜브'는 현재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린 그런 사람들은 '유튜버'라 부르며, 이들을 반쯤 연예인 취급하기도 한다.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에서 '유튜버가 되고 싶다,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진로설문 결과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도 있다.


과거의 'TV'를 통한 프로그램들은 거의 일방향 소통이었다. 시청자 게시판이 있긴 하지만, 굳이 찾아보러 가는 사람들보다는 TV를 끄고 돌아서면 잊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바로바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댓글'의 환경이 유튜브처럼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하나의 프로그램이 굉장히 길게 편성되어 있으므로, 한 번에 최소 30분 이상을 시청에 투자해야 한다.

반면, 유튜브는 채널을 개설하고 동영상을 올리는 순간 모든 수치가 눈에 보이며 즉각적 반응 확인이 가능하다. 정보화 시대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엔 비전문가들도 전문가만큼은 못하지만 수준급의 정보 수집 능력을 자랑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유튜버의 수익까지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이다. 유튜브는 너무 오픈되어 있는 공간이다. 내 채널 구독자 수, 조회수, 댓글 수,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남겼는지, 채널의 주인은 어떤 반응과 피드백을 주는지 전부 보인다. 과도한 정보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


정보가 많으면 분석할 것이 많고, 비판적인 사고를 향상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독이다. 세상에는 직접 분석을 해내는 사람보다 '분석한 결과를 영상으로 만들어 송출하면 그것을 보고 그대로 믿는 사람'이 더 많다.


앞서 영상의 장점이자 단점이 '편리'라고 말하였다. 바로 그 편리가 생각을 죽게 만든다. 편안하게 방안의 침대에 엎드린 채, 편리하게 몇 번 화면을 두드리면 끝나는 정보 수집. 글이었다면 1분이면 읽을 수 있는 단문을 10분이나 되는 영상으로 늘려 '순차적으로', '편하게', '알아먹기 쉽도록' 내놓은 그림들을 눈으로 훑기만 하면 끝나는 일. 정보를 얻는 방법은 참 많지만, 사람들은 쉬운 것을 선호한다. 이렇게 된 지금,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의 증가이다.


초중등학생 대부분이 글보다 영상을 선호한다고 한다. 글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 실질적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하는 현상이 늘어간다. 한글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실질적인 문맹률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실질적 문맹'은 6년 새 2배가 늘었다. 전체 성인의 22%가 실질적 문맹자에다, 10대의 30% 정도도 단어에만 매몰되어 말의 요점 파악을 힘들어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이 영상이 주는 '순서'와 '그림'에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그림과 영상은 보조이다. 아무리 세상이 영상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는 일 자체가 사고력 증진을 위함임을 잊어선 안 된다. 세상이 영상만을 송출한다고 해도 글을 읽는 능력을 갖추지 못해선 안 된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곧 사고력이다. 사고력이 없는데 비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 가지 문제를 더 짚어보자. 먼저, 청소년들이 희망 진로 칸에 '유튜버'를 적는 일이 늘어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동경은 쉽다. 현재 붐을 일으키는 직업이라면 당연히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유튜브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가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 자체 정책에 따라 유해 콘텐츠를 거르고 아동용 영상을 분류하는 등의 노력은 진행되고 있다지만, 방통위가 가하는 제재와 심의 만큼 잘 될 리는 없다. 애초에 유튜브는 공영방송이 아니다. 아이들은 걸러지지 못하고 쏟아지는 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당연하게도 유해한 것을 접하게 된다. 현 세대만큼 욕설과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가진 세대가 있었던가? 비판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재미를 가장한 혐오는 정말로 '재미' 그 자체가 된다. 그 결과로 지금의 언어 실태만 보아도 참담한 수준이다. 심지어 이것은 다 자란 성인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이다. 쳐다보기만 하다 생각을 놓고 빠져들고 만 것이다. 보기만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내 의견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결국 보았던 내용 안에서 맴돌게 되는 게 당연하다. 


장시간 읽는 것과 장시간 보는 것의 차이란 명확하다. 주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주는 정보를 받기만 하느냐의 문제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성숙함까지 같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기술은 빠르고 의식은 느리다. 그것이 역사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우리는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더욱 작아지고 편해진, 상자라기엔 너무 작아진 이 판때기를 어떻게 '바보'처럼 활용하지 않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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