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청하

by 선희 마리아

남자는 마음이 여리고 착했다. 자기 주장을 할 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말에 반대하지 못하고 따르는 편이었다. 원하지 않아도, 엄마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자기의 주장을 철회했다. 착한 남자에게는 요구사항이 점점 많아졌다. 남자는 묵묵히 감내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다. 엄마는 한 직장에서 5년은 근무하는 것이 경력이나 이력에 유리하다고 조언 겸 강요를 하였다.


5년 뒤! 남자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잠적해 버렸다. 핸드폰도 바꾸어 연락할 데가 없었다.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6개월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해 왔다. 잘 있다는 의례적인 안부였다. 방법이 없었다. 아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책이 밀려 왔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해 볼 길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들은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린 새였다.


3년 정도가 지났을 때, 남자가 연락을 해 왔다. 서울에서 안정된 직장을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여자친구가 있다고 소개하러 오겠다고 했다. 부모는 그동안 남자가 보여줬던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건강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상당한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부모의 어떤 영향력도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처음 만나던 날, 남자의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아주 수더분하고 건실하였다. 아들의 안목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것이 내심 기뻤다. 미술을 전공하고 섬유 계통의 회사에서 패턴이나 무늬 등을 넣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에 의하면 남자친구는 자기가 처음이라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 이야기로는 믿기 힘들었지만 만나보니 그럴 것 같았다.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이 정확하고 성실하여 일탈이나 궤도를 벗어나는 일은 하지 못하는 성격 같았다. 운동을 좋아하여 직장에서 퇴근하면 운동에 몰두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했다. 남자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고 가볍게 넘겼다. 결혼을 할 무렵, 결혼식에서 두 사람을 연결시켜 준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결혼식에 오지 못할거라고 했다. 뭐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도 없었다.


결혼을 하고, 여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만났냐고? 그랬더니 지하철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무작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지하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눈이 맞고, 연락을 시도하고, 만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은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출근 시간에 여느 때처럼 지하철에서 내려 이어폰을 끼고 거의 뛰다시피 걸어가고 있는데 남자가 전화번호를 달라고 앞을 가로막더라는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불편하여 그냥 무시하고 갔다. 며칠 후, 아침에 또 다시 남자가 핸드폰을 내밀며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번호를 찍어 주고 있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고 걸어가면서 내가 무슨 짓을 했지? 하는 생각이 늦게야 왔다. 예전에도 한두번 연락처를 달라는 사람이 있었지만 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나서 결혼을 했다.


결혼은 불가사의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을 넘어서는 연출자가 반드시 있다. 사람들은 우연한 만남, 필연적 만남, 운명적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결혼은 인간의 계획과 의도가 먼저 작동하지 않으면, 정해진 짝이 있고, 그 짝은 언제, 어디서라도 만나게 되어 있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 내 짝으로 허락된 반려에 대한 소중함과 귀중함, 결혼으로 맺어진 새로운 관계에 대한 깊은 책임감, 함께 가야하는 긴 여정에서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배려, 부담과 불편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 결혼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리고, 결혼에는 어떤 조건이나 요소도 사랑보다 앞서게 하거나 우위에 두지 말아야 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첫 마음이 결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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