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정희 할머니

by 선희 마리아

올해 구십 세가 되신 정희 할머니는 많이 아프시다. 3개월 전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려고 주일마다 찾아오는 아들네를 기다리다 싱크대 앞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들 내외가 어머니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섰는데 정희 할머니가 부엌 싱크대 아래 쓰러져 계셨던 것이다. 모시러 가겠다고 전화한 지 두 시간 여 사이에 쓰러지신 것이다. 아들은 놀라 부랴부랴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셨다.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할머니는 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할머니는 수술 후 이 주일 가깝게 의식이 없는 상태여서 모두들 돌아가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명은 끈질긴 것이었다. 의식 없이 지낸 지 보름이 지나자 할머니는 손끝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 할머니는 대학병원에서 장기 요양 병원으로 옮겨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재활에 들어가신 것이다.


할머니의 삶은 파란만장하였다. 경상도 남녘이 고향이었던 할머니는 이 땅에 개화가 시작되던 무렵 이발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생활은 유복하였다. 그러나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유교 관념에 철저했던 아버지는 오히려 더 완고하고 고루하였다. 여자는 밖으로 나돌면 버린다는 생각으로 딸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부는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정희 할머니는 집 밖을 나갈 생각도 못하고 살림만 배웠다. 아버지는 어려워서 가까이 가보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들어온 새어머니는 매몰차게 정희 할머니를 부려먹었다. 정희 할머니는 일찍부터 자신의 노력으로 필요한 돈을 충당해야 했다.


순종 밖에 모르던 정희 할머니는 그렇게 처녀 시절을 보내고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남자의 폭력과 외도에 시달리던 정희 할머니는 다시 친정으로 쫓겨오게 되었다. 불편하고 눈치 보이는 친정 더부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비슷한 나이의 막내 이모가 소개해 주는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정희 할머니는 남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모의 말만 듣고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재혼이 부끄러워 아무도 모르라고 고향에서 제일 멀다는 전라도로 갔다. 남자의 집에 들어서자 매서운 시어머니가 정희 할머니를 맞이하였다. 남편은 훤칠하고 잘 생겼었다. 그런데 남자는 부인을 병으로 잃고 나이 드신 어머니가 살림을 맡아서 하는 네 명의 아이가 딸린 자리였다. 정희 할머니는 기가 막혔지만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집 귀신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은 솜씨가 좋은 목수였었다고 했지만 정희 할머니를 만났을 때는 일을 손에서 놓고 돈을 벌어오는 일이 없었다. 그 후로도 남편은 돈을 준 적이 없었다. 돈은 주지 않았지만 돈 들어갈 곳은 천지사방이었다. 중학교부터 초등학교까지 줄줄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아침마다 손을 내밀었다. 밑 빠진 독처럼 돈이 필요하였다. 정희 할머니는 처녀 적부터 야무진 손끝으로 바느질을 하여 용돈 벌이를 했던 경험을 살려 바느질로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갔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사랑하였다. 특별히 당시 네 살 밖에 안되었던 막내아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다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고 운동회 때마다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선생님께 전달하면서 아들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낳은 엄마도 못하는 정성을 아들에게 쏟았다.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할머니의 정성을 모르는 선생님이 없었고 선생님들은 그런 할머니를 대단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할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니니까 동네나 주변에서 막내아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착하고 순했던 아들도 어머니 밖에 모르면서 어머니의 치마 끝을 붙잡고 따라다녔다.


정희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한복과 수의 바느질을 하였는데 시간이 없어서 일감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할머니의 일과는 집안 살림과 바느질, 남편 모시기였다. 입이 거칠어서 항상 욕을 달고 살았던 시어머니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셔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벗어났지만 남편 뒷바라지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남편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법이고 자신이 기준이었다. 의관을 갖춰 입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참여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했고 남편의 성화를 당연하게 감내하였다. 옆에서 보기에는 저런 관계도 있을까 싶었지만 할머니의 남편에 대한 존경과 믿음은 대단하였다. 집안일은 손톱 하나 까딱 하지 않았지만 처녀 시절부터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왔던 할머니는 남편의 시중을 드는 데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유일한 외출은 교회 가는 것이었다. 집안일과 아이들 뒷바라지, 남편의 시중과 바느질 등으로 견딜 수 없었던 할머니가 이웃 사람에게 부탁하여 나가게 된 교회였다. 할머니는 교회에 나가자마자 새벽기도부터 시작하였다. 교회까지 족히 삼십 분은 걸렸지만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자기의 시간이었고 자기의 괴로움을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교회에서 실컷 울고 실컷 하소연한 다음에 할머니는 얼굴을 싹 씻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에 돌아가서 그 고된 집안일을 감당해 내었다. 낮에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삼십 분이 넘어 걸리는 집으로 달려가 남편의 점심상을 차려 올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오곤 했다. 남편이 교회에 가지 말라는 말만 하지 않게 모든 것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다.


어렵게 길러낸 아이들은 장성하여 각기 자기 길을 갔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키웠어도 생모가 아닌지라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정이 없었다. 간혹 잘 산다는 소식만 들려오고 어쩌다 한번 휙 들러보는 것이 효도의 전부였다. 할머니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마음 쓸쓸하게 노년을 지냈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사랑하고 아꼈던 막내아들이 어머니 가까운 곳에 살면서 아들 노릇을 해내는 것이었다.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할머니는 수술 때문에 깎인 민머리에 간혹 오는 섬망으로 두 손이 침대에 묶인 채로 누워 계신다. 흐릿한 눈동자로 사람을 바라보고 기다린다. 말을 알아듣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탓에 말없이 바라보는 눈동자가 애처롭다. 할머니를 보며 남자와 여자를 묶는 결혼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결혼은 운명인가. 선택인가. 받아들여야 하는가, 거부하거나 개선해야 하는 것인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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