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경순이

by 선희 마리아

남자의 표정은 언제나 묘하였다. 키도 크고 훤한 인물에 노래, 운동, 사회 등등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재주꾼이어서 그가 속한 곳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단히 역동적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사교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얼굴에 어두움이 있었고 눈은 슬퍼 보였다. 처음에는 잘못 보았으려니 했지만 여러 번 볼 때마다 그런 표정은 이상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 그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니, 그에 대한 나의 느낌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청하였다. 도시적이고 시크한 모습과 달리 털어놓는 이야기는 구구절절, 산 너머 길을 돌고 돌며 이어졌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였다. 시골 중에서도 산자락 바로 아래 자리 잡은 깡촌에서 어머니와 누나, 동생과 자랐다. 아버지는 계셨지만 그의 기억에는 없는 분이었다. 엄마는 남의 집 밭일, 논일, 산일을 하면서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키워냈다. 엄마의 유일한 생존의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노래를 잘했던 그는 고등학교 무렵, 친구를 따라 동네에 있는 교회에 가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그에게는 신천지였다. 여학생들이 있고 쓰다듬어 주고 말을 곱게 해주는 선생님들과 먹을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풍금과 찬송이 있었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서양 곡조의 찬송가는 그를 끌어당기고 묘하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한 번도 아버지를 불러보지 못했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조금 지나서는 부르고 싶던 아버지를 마음껏 부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한을 풀어 내었다.

절과 굿 등의 민간신앙을 신봉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여자, 남자가 우굴거려 연애당이라고 지탄받는 노랑머리 서양 종교인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극력 반대하였다. 어느 일요일, 어머니는 아들이 가 있는 교회에 가서 담판을 짓고 아들을 빼와야겠다고 결심하고 술을 마시고 교회로 향하였다. 교회에 도착하여 문고리를 잡았는데 아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헌금 시간에 아들이 앞에서 독창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온몸을 휘감는 아들의 절절한 찬송 소리에 혼미해진 엄마는 잡았던 교회당 문고리를 놓고 그대로 뒤돌아 밭으로 가서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는 아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영특했던 아들은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였다. 아들은 제일 먼저 집 근처의 교회를 찾아갔다. 노래 잘하고 운동 잘하는 믿음 좋은 대학생은 서울의 교회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음껏 놀고 연애하였다. 어떤 여학생이고 활발하고 재주 많고 잘 노는 그를 마다 하지 않았다.

군대를 갈 무렵, 교회학교 교사를 같이 하던 4살 연상의 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 어울리던 또래의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모습과 분위기였다. 여자는 독신 주의자였다. 예수님과 결혼하여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동생으로 알던 남자가 이성으로 접근해 오자 여자는 철벽을 쳤다. 나이도 어리고 그동안의 여성편력도 모두 알고 있는데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옥신각신 끝에 남자는 군대를 갔다. 여자는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3년 뒤, 남자는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다시 교회로 왔다. 그리고 정식으로 교제를 청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계속 생각했다고 했다. 정상적이지 못했던 가정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매달리며 진지하게 교제를 청하는 남자에게 여자도 화답하였다. 남자의 졸업을 기다려 둘은 결혼하였다.

둘의 결혼 생활은 험난하였다. 가정과 지역과 나이에서 시작되는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끼가 많고 친구가 많은 남자는 반듯하고 규칙적인 여자의 울타리 안에 갇히기에는 너무 어렸고 부모 되기에도 어렸다. 그 사이에 딸과 아들이 태어났다.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세상에서 얘들을 키우고 살아가느라 둘은 모질게 고생하였다. 모든 것이 맞지 않았지만 올바른 가정을 만들어 보자는 데는 의기가 투합했다. 남자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을 잘 키우는 여자를 보며 자기가 그렇게 꿈꾸던 가정이 만들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감격하였다.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의 좋은 점을 모아 닮았다.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도 잘 하며 춤도 잘 추었다. 남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음껏 사랑받은 아이들의 특징처럼 어느 곳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였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애를 쓰며 이루고자 했던 화목한 가정이라고 주변의 사람들이 칭찬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반듯하게 자라 직장을 얻고 딱 맞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였다

삼십 년의 세월이 흘러 뒤돌아 보면서 자기들이 꿈꾸던 가정이 세워졌음을 보고 남자와 여자는 자기들의 선택과 노력이 잘못되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가장 값진 것에 투자하였다는 것에 안도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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