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쪽이 사라졌다

아버지의 죽음

by Sunny Day
생전 아버지 이야기 한 번 하지 않아서
살아계신지 돌아가신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존재감 없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나에게 아버지 장례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우리가 시시콜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관계였다니 하는 서운함에서 나온 이야기였겠지만 무척 아프게 들렸다.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자신을 중심축에 놓고 관계의 소원함과 서운함을 앞세우며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 앉아 있으려니 나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좋든 싫든 나를 낳아준 아비의 죽음을 마주하고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고 온 나에게 말을 저렇게밖에 못 할까?


속이 상하고, 나야말로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뜨거워지는데 상대도 가만히 멈춰있었다.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무언가 숨겨진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이르자 무겁게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하셨어요.
알콜중독에... 폭력도 있고...
가족들이 오래 시간 버텼는데.... 결국... 따로 살게 되었어요.
그렇게 된 지 오래됐어요.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만나게 되었구요...

아버지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어요...
너무 힘든 이야기라서... 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했던 것 같다. 나도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인데, 왜 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무력감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아비를 잃었다.

가장 예민하고 연약했던 어린 시절을 오랫동안 상처 받고 아파하고 눈물 흘려도 바뀌지 않아서 지옥같이 느끼며 어거지로 살다가, 결국 탈출하듯 도망 나와서도 십수 년을 숨죽이며 살아왔는데 결국 고슴도치 가시 돋친 그 아비는 먼 길을 떠났다.

그동안 수 없이 입으로만 되뇌었던 '용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떠나버린 아비의 따뜻한 한 줌 재 앞에서야 터져 나왔는데도 왠지 설명 안 되는 허망함으로 나와 가족들은 잠시 멈춘 시간을 일주일 동안 보내고 왔는데... 왜 다듬어지지도 조심스러워하지도 않는 그 거친 솔직함 앞에서 무력해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가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떠올리면 섬뜻해서 싫어진다. 왜 난 피하지 않았는지, 듣기 싫은 소리면 듣지 않으면 되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그 싫은 두 가지를 모두 그대로 버티고 견디고 해냈는지, 나의 그 미련함이 아직도 아쉽고 못났다 싶다.


너무 연약해서 유리알같이 투명했던 그 시절을 상처 투성이로 보내고 이제 반쪽만 남았다. 존재감 없던 아버지는 정말 이 세상에는 남아있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정말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