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실버타운 정보를 찾고 있었다.
이십년 남짓 떨어져 지낸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그날 밤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와 일흔이 넘은 할머니 부부의 남은 여생을 보내실 수 있는 보금자리로 서울, 경기 인근의 적당한 실버타운을 인터넷에서 뒤지고 있었다. 사실 엄마의 부탁을 받은 것이었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자료를 찾고 정리해드리려고 했다. 엄마는 자격증은 가지고 있지 않으셨지만 요양보호사 비슷한 역할로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다. 가깝게 지내던 노부부의 요청과 어르신들을 잘 섬기고 잘 챙기는 엄마의 성향이 잘 맞아떨어져 시작한 새로운 일이기도 했다. 관리회사를 거치지 않고 순전히 개인적으로 부탁받고 시작하게 된 일이어서 그냥 말동무 해드리는 정도이거나 더 한다면 음식솜씨 좋은 엄마가 뚝딱뚝딱 밑반찬 만들어 어르신들 식사 챙겨드리는 일이겠거니 했는데, 그것도 몇 년이 지나니 과업이 점점 늘어났다. 밑반찬 받고 이북식 명절음식 준비하기, 병원동행에 수술 간호, 이사준비, 거기에 서울과 수도권 인근의 실버타운 정보 찾기까지 엄마 혼자 다 감당하시기에는 버거울 정도다. 여하튼, 엄마의 늘어난 과업에 맞춰 딸들도 덩달아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많은 경우, 가장 가까운 사람의 하나였을 아버지의 죽음을 맞딱뜨리게 된 바로 그 날, 나는 직접 얼굴도 마주한 적 없는 노부부의 여생을 위한 준비를 돕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었다. 사회복지사로 15년 밤낮을 남 좋을 일 하며 지냈는데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여기에 어울리려나? 어떤 비유가 적당할 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남 좋을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순간 씁쓸했다.
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시절, 그 중 좋았던 기억은 흐릿하거나 기억에서 잊혀졌는데, 정작 잊고 싶었던 힘든 기억은 왜 그리도 오래 남고 지워지지가 않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고도 결국 우리는 계속 살아나가야 할 일에 대해서 궁리하고 더 잘(!) 살고자 고민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삶인가보다 하며 어정쩡한 결론을 지어보았다.
살고 죽는 것, 인류의 역사상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것
사는 동안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서는 살아왔던 시간을 되돌리고 싶기도 한 것
삶과 죽음은 늘 같이 가는 것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명작의 한 페이지를 뒤적이지 않아도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 금새 떠올리는 수 있는 문장, 다시 읽어보니 그 앞에 단어 하나씩이 빠져있는 것 같다.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감히 건방지게도 내 식으로 내 해석대로 다시 써보니 이렇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인가?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 그것인 문제로다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버지의 지나온 삶에 대해 되짚어보게 되었다. 슬픔에 잠기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는 일,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들, 그 영향들, 지금의 우리들까지 모두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과정은 우리에게 깊은 애도의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