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11월 어느 날,
30년 전만 해도 가까웠던 누군가의 죽음이 전화를 통해 전해졌다. 아버지다.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글로 다 옮겨 쓰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알콜중독인 아버지, 주사가 심하다 못해 폭력적으로 변해 집안 살림살이는 커녕 사람도 두들겨 패고 못살게 굴며 오랫동안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친구와 이웃을 잘못 만났고 무엇이든 술로 풀고 술로 해소하려고 했고 술로 만끽하려고 했다. 슬픔도 고된 일상도, 즐거움도...
너무 추웠던 어느 겨울 날, 소주 심부름을 하던 나는 그만 미끄러져 소주병을 깨뜨렸고 결국 빈 손으로 돌아와 집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추위보다는 빈손으로 돌아와 혼날 것이 무서워 한참을 덜덜 떨었던 기억이 마흔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역시나 크게 혼났고 굳은 살 박힌 두꺼운 손으로 작았던 몸 어딘가를 쳐맞았던 기억도 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었는데, 심부름에 늦으면 안될 것 같은 급한 마음에 집에 있던 차림 그대로 나가느라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나가서 발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눈 내린 후 꽝꽝 얼은 빙판길 한기를, 맨발 슬리퍼 차림으로 그대로 맞딱뜨리면서도 빨리 사가야 했다. 친구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깨뜨려서 어쩌지, 많이 혼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취기에 잠들지 않았을까... 하는 일련의 기대와 희망은 결국 와장창 깨지고 말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저린다. 그 날은 겨울 중에서도 정말 추운 날이어서 길거리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추운 날이었다.
어리고 연약했던 내가 너무 처량하다. 말할 수 없이 안쓰럽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그 때와 다르지 않고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서 더욱 애처롭다. 나의 어린 시절, 가슴이 아프고 저린 기억의 대다수는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은 살아났다. 사라졌는 줄 알았던 아픈 기억이 누군가의 죽음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