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온라인 예배 중에 한 여자 전도사님이 여성폭력을 막기 위한 중보기도를 낭독한다.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원고도 없이 앞만 쳐다보고는 아직까지 불치의 병처럼 치유되지 않은 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는 질병, ‘여성폭력'에 대해 계속 말씀하셨다. 단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쳤다.
나지막한 목소리인데 그 속은 단단하고, 표현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순간 홀리듯 시선을 빼앗겨 기도합시다 하는 말로 끝맺음을 맺기 전까지 눈 한번 깜빡거리지 않고 숨고르며 들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이름 석자를 검색해보았다. 여성의전화에서 일하셨던 분이었다.
역시 오래도록 현장과 함께 한 활동가의 내공이 있었다.
동생과 마주하며 내공이 있고 저력있으신 분이다, 대단하신 분이다 하는데, 기억은 벌써 갓 스무살이 되던 해로 돌아가 있었다.
1366
선릉역 근처 진선여자중학교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벽에 붙어있던 전화번호를 보게 되었다. 1366
그리고 근처 공중전화를 찾아 손가락을 덜덜 떨며 그 긴 네 자리 숫자를 눌렀다. 한참이 걸려 연결된 어느 여성 상담원에게 말을 걸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우리 가족이 모두 힘들어하고 있노라고.
이후 공감의 몇 마디가 돌아왔지만 그녀는 결국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다.
가족안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 어떻게 처리하기 어려워요. 안타깝지만...도와드리고 싶지만...
자신도 도울 수 있도록 어쩌지 못하는 허술한 법과 제도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그 여전도사님과는 다르게 그녀는 자신감이나 단단함이 없었다. 나긋나긋하다 못해 무르고 느긋해보였다.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는 너무 멀어보였다. 그 날, 나는 괜한 용기를 냈다가 되려 큰 상처를 받았고 마음에 스크래치가 남았다.
꽤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고 괴롭게 했던 시간이었다. 아버지와의 기억은 8할이 그랬다. 8할의 기억을 아예 통째로 드러내고 싶다고 생각했고, 죽음이 답인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이따금, 아니 꽤 자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