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그래... 다 한 번은 왔다 가는 거야.
아버지가 계셨으니 선희가 있는 거였지.
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많이 미워하기도 했는데... 부고 소식을 전하는 전화 너머로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 내 절반은 아버지였구나' 싶었다.
아픔과 미움이 크니 슬픔도 적을 줄 알았는데......
왠걸 그렇진 않았다.
내 절반이 아버지여서 그랬다 보다
싫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나긴 했지만 흐릿하고 희미해졌고, 그 보다는 병상에서 맞이했을 외로운 죽음이 그려져서
마음이 괴로워졌다.
코로나가 급속도로 번지는 중에 치르는 장례는 누군가를 오라고 청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실제론 다행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 그러니까 다락방 아니, 다시는 뒤질 수도 없는 땅 속 깊은 곳에 파묻어놓은 과거의 아픔을 다시 헤집어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고..... 우리의 아픔을 묻는 이들에게 계속 꺼내 보내야 했는데 어쩌면 코로나 핑계가 잘됐다 싶었다. 그렇게 깊이 묻어놓는 상처를 끄집어내기 너무 두려웠다. 다시 되살아날까 봐. 다시 아플까 봐.
'아버지'라는 이름을 오랜만에 불러보았다.
십 대 여고생 시절에 앞으로 내 생전에 '아버지'라는 이름은 부르지 않겠구나, 부를 수 없겠구나 했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하나님 아버지, 하늘 아버지만 계신다고 여겨왔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듯이, 잡을 수 없지만 닿을 것 같이 가까이 계시는 그분,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아버지는 아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코로나로 빈소는 차리지 않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기도 부탁드려요.
짧고 간결한 문자를 써서 바로 생각나는 몇 군데에만 ‘복사(ctrl+c)+붙여 넣기(ctrl+v)’했다.
과연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인가 보다
엄마가 속회 속장님께 짧은 통화로 알렸을 뿐인데 연락이 일파만파다. 회사와 교회, 훈련 공동체에도 알렸다. 위로의 메시지가 쌓이지만 읽지 않았다. 읽을 수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는데 차마 받을 수가 없었다. 괜스레 아무렇지 않은 듯, 세상 담담한 척하시는 엄마의 표정을 곁눈질로 보고 있자니 전화통화라도 하다가는 삼십 년 가까이 참아온 눈물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부둥켜 울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긴 시간 참아온 눈물보가 터지면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봇물 터지듯 넘치고 넘치고 폭발하듯 터지는 눈물에 하염없이, 그리고 하릴없이 우리 모두가 떠내려갈까 봐.
쌓여가는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를 놔두고 우리는 우리 서로의 슬픔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의 방식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