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일기
다시 영성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 유익이 크다는 목사님의 말씀때문도
전에 맘맞는 직장동료 몇명과 쓰던 기억때문도
아니었다.
전적으로 내가 살기 위해서다.
모든 걸 걸어서 매진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두어달 쉬게 되면서
다시 또 나는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 맞는지,
내 필요가 있는 어딘가를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맥이 다 빠지고 땅 속으로 꺼져버릴듯한 우울감이
때때로 내게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냥 그저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았고
그만 두어야 살 것 같았는데
그만 두고 나니 정작 다른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마음의 부담감이 찾아왔다.
작년 여름, 한참 더운 휴가철에
호기롭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는데
(사실은 더 일할 에너지가 없었지만)
두 달을 내 자신과 고군분투하며
말씀묵상으로 상념을 이기며 여름을 났고
주변의 여러 우려가운데 들어간 회사를
반년 만에 나오게되니
왠지 단추를 잘못 채운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부터
지나간 날들의 땀 흘린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허망함도 함께 밀려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일할 때는 진액까지 죄짜서 에너지를 쏟아붓다가 나를 살피기는 커녕 내버려두었다가
넉다운되어 내동댕이쳐지면
그때서야 터덜터덜 뛰쳐나오고..
이제 그런 건 안하고 싶었다.
그리고 쉬는 것도 아니고 안 쉬는 것도 아닌
이직준비기간에는
그제서야 너덜너덜해진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됐다.
너덜너덜해진 가여운 내 모습
왜 이토록 챙기지 않았는지 짠하기 그지 없었다.
열심으로 살았다고 자부했던 내 모습속에는
나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교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더군다나 소위 좋은 일, 선한 일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의식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아니라
나의 선함을 자랑하는 것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회복지의 가치가 퇴색되거나
아이들을 돕는다 하면서 아이들을 도구삼고
자신이 영광받으려 하는 사람들을
치가 떨리게 싫어했는데,
그래서 누구보다 일의 과정에서
가치와 신념을 지켜내며 일하기 위해 애썼는데,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접할 줄이야.
나의 열심과 최선이
하나님보다 나를 앞세우게 되었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너무 부끄러워 숨고싶었다.
의와 선으로 치장하고 옷입었던 말짱한 내가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너덜너덜해진 부끄러운 모습으로
거울앞에 서 있는 꼴이었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동생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길을 걷다가
그만 길에서 멈춰서
나를 위한 회개기도를 했다.
나의 부끄러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나의 열심과 나의 최선을 내려놓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최선을 다한다 자신했는데,
그 열심으로 오히려 나를 돌보지 못했고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는 선한 사람입니다' 하고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넘치는 열심으로 나를 상하게 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기도를 하며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내게 하나도 남김없이 십자가 앞에 내려놓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나도 모르게 깊이 숨겨두었던 찌끼마저
다 꺼내놓고 자유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셨다.
나의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