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하나님의 역사
상한 마음으로
좀처럼 바로 앉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힘을 좀 내서 달려보라고 외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위로인지 모른다.
함께 드러누워 팔베개를 해주고 눈물도 닦아주고 손 잡아주는 것이 차라리 나을 일이다.
내게 위로하는 은사를 주셨을까 (싶다)
#나를 좋아했던 질투심 많은 교회동생
항상 나를 경쟁상대로 여기며 질투가 많았던
한살 아래의 주일학교 동생.
성탄절 연극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을 맡은 것도,
본인이 구두수선공이나 거지와 같은
소위 예쁘지 않은 역할을 맡게 된 것도 억울하다고 아무도 없는 교회당에서
내 앞에서 버럭버럭 소리지르며 울음보를 터뜨렸던 그 날도 나는 위로했어야 했다.
위로의 댓가로 착한 척 좀 하지 말라고,
좋은 배역 뺏긴 것도 억울한데
왜 착한 척까지 해서 짜증나게 하느냐고
진짜 싫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고
어렸던 나에게도 상처가 되었지만...
그래도 동생에게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몫은 나에게 있다고 여겼다.
#무릎으로 기도하며
신학생 시절,
함께 공부하던 만학도 권사님께서
갑작스런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고,
항상 유쾌하고 쾌활하던 권사님이
기운없이 축 쳐진 어깨로 다니시고
수술 후 빠진 머리카락을 가리느라
가발을 쓰고 오셨을 때도,
쉬는 시간 각자의 사역현장의 어려움을 나누며
교제할 때도 하나님께서 내게 위로의 영을
부어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권사님의 무릎을 부여잡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중보할 때
내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공동체의 회복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면서,
팀의 동료 한 사람으로 팀원들 모두
무척이나 힘들었고 그녀가 완결시키지 못하고
실수하는 일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심지어 팀내에서 내가 왕따를 시킨다는 소문을
내서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나의 기도제목이었고
우리 팀은 뾰족뾰족 모가 나있는 동료를 위해
특별한 팀 프로젝트를 만들어
몇 주간 진행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상처받았지만 공동체에서 건강한 위로를 맛보여주기 위해 힘을 모았다.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 위로의 말과 중보기도는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싶게 마무리되었는데..
퇴사하고 수개월인지 일년 쯤인지 되었을 때
"그때의 나를 향한 위로, 팀원들의 특별한 사랑의
마음을 이제야 느끼겠어요."
하는 전화연락을 받게 되었다.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미안해요.
왜 그랬었느냐고
어리광섞은 옛날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고,
책망으로 부담을 지워줄 필요도 없었다.
성경을 읽고 그 성경을 다시 옮겨적는
'필사성경'을 하며
내게 위로하는 영을 부어주심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바울이 교회들을 향해 적어내린
권면의 편지, 위로의 편지..처럼
나로 하여금
'쓰면서(writing) 위로하고
은혜를 끼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적어보려고 한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말로 표현 못할 기쁨,
감사의 일들을
성경으로 남긴 제자들과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치열한 현장을 보고하는 서기관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