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 두 마리, 황금뱀 한 마리, 하얀 양 한 마리
우리 집엔 한 지붕에 삼대가 산다. 아들, 손주, 며느리, 그리고 어머님.
아들은 하얀 양 한 마리, 손주는 어머님과 같은 황금돼지 두 마리, 며느리인 나는 황금 뱀 한 마리.
띠궁합으로 보면 뱀띠와 유일하게 상극인 띠는 돼지띠라고 하는데,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이라 괜찮다는 말에 위안을 가져본다.
황금돼지띠이신 어머님과 아이는 딱 회갑으로 육십 살 차이가 나고, 나는 그 중간에 딱 끼어있어 위아래로 서른 살 터울이 진다. 유전학적으로 인간의 한 세대는 30년 주기를 이루니 우리 집은 어머님, 며느리인 나, 나의 딸 이렇게 세 여성이 완벽한 삼대를 이룬다. 남편은 나보다 두 살이 어리다.
며느리인 내게 시어머님과 삼대가 같이 한 지붕에서 살면 불편하지 않냐고 많이들 묻는다.
나도 처음부터 흔쾌히 어머님을 모시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두 여성 간의 관계 중 가장 미묘할 수밖에 없는 고부관계이기에 지금 좋은 관계일지라도 같이 살면서 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했다.
어머님께서 내 손을 부여잡으시고 눈물로 같이 살자고 호소하시기까지,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고, 모든 결정은 그날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네 어머니, 그렇게 아버님 돌아가시고 밥도 못 잡수시고, 잠도 못 주무신다고 정서적으로 힘들다 하시면 같이 살아야죠.
그런데 어머님께서 저희 집에 오시면 제가 살림 맡기고 일하러 나갈 수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어머님께서 조금은 당황하신 듯 보였다. 며느리가 바로 맞받아 칠 줄은 모르셨으리라.
그렇게 우리 집에서 함께 하신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우리 집에서 암묵적 동의하에 서로 간에 지키는 룰이 있고, 그 십계명을 소개한다.
1. 요리) 어머님은 셰프, 나는 주방장.
어머님은 메뉴를 정하시고, 장을 봤다 주시고, 레시피를 알려주신다.
나는 요리해서 차리고, 뒷정리와 설거지를 한다.
어머님은 장 보는 것을 좋아하시고, 제철음식을 잘 알고 계신다. 아버님과 할머님 병간호를 길게 하셔서 건강정보와 건강한 음식에 일가견이 있으시다. 짧은 입맛을 가지셔서 때때로 입맛 당기는 음식을 메뉴로 선정하시면 식구들이 모두 맛있게 먹는다.
내가 일정이나 약속으로 집에 없는 날로 요리를 못하는 날이면 어머님이 대신 밥, 국, 반찬을 모두 해주시는데 요즘 이렇게 감사한 날들이 많아진다.
2. 청소) 어머님은 어머니방, 거실, 거실화장실을, 나는 안방, 주방, 아이방, 안방화장실을 담당한다.
우리 집엔 원래 청소기가 없다. 핸디청소기 하나 있는데 걸레질로 모아 놓은 먼지를 흡입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바닥청소를 손걸레질을 해야 깨끗하기도 하고 운동삼아 수련한다고 생각하면 힘들 것도 없다. 큰 집으로 가면 청소기 구매를 고려해 보겠지만... 지금은 핸디청소기, 손걸레, 돌돌이면 청소 끝!
청소 담당 구역이 확실히 정해져 있고,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포인트.
예) 안방은 금엄지역(어머님 출입금지 구역)
3. 빨래) 집에 있는 사람이 보통 하게 되더라.
등원 준비하면서 세탁기 돌려놓고, 운동 끝나고 와서 건조기에 옮겨 돌리고 건조 끝나면 하원 시간 전에 빨래 개는 나만의 루틴이 있었는데 세탁기 운행 끝나는 알림 소리 들리는 즉시 집에 계시던 던 어머님이 하시게 되네.
4. 재활용 분리배출, 일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내담당
신혼 생활 때부터 지금까지 내 몫이다. 이 정도는 남편이 좀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데, 그놈의 '조금만 이따 할게 ' 병에 못 미더워서 내가 하고 만다는 게 7년 차다. 분리배출하는 날이 남편이 쉬는 날이거나 재활용 쓰레기 양이 많거나 내가 못하는 경우에만 어머님 또는 남편 도움을 받는다.
5. 등하원) 내 담당.
아이 등하원뿐만 아니라 교육, 훈육은 주양육자인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아이가 혼란을 주지 않게 하므로 맞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맞벌이 여부와 상관없이 주양육자가 집에 있는 경우에는. 하지만 나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내 생활이 있다 보니 시간 상 하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요일이 있다.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하는 날이 목요일인데 봉사가 1-5시까지 있어 아이에게 4시에 할머니랑 하원할래, 5시에 엄마랑 하원할래 하니까 4시에 할머니랑 하원해서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해서 어머님께 하원 도움을 받는 날은 시급 만원을 꼭 챙겨 드리고 있다.
가족끼리 왜 그러냐고? 그냥 도와줄 수도 있지 않냐고? 나는 내 담당인 일을 못하는 입장인 날에 어머님께 외주를 드린 것이다. 시급 만원은 아이와 간식을 사 드실 수도 있고, 따로 모아 놓으신 다음 다시 자식을 위해 환원한다 하시지만 어떻게 쓰셔도 섭섭할 것도 서운할 것도 없다. 가족 간에도 공사 구분, 시간약속, 돈계산은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가계부) 빠뜨리지 않고 쓴다. 나와 어머님 더블체크
확실히 살림 규모가 커졌다. 어머님이 한 달에 삼십만 원씩 생활비에 보태 주시고 남편이 어머님께 한 달에 이십만 원씩 용돈을 드리고 있다. 오고 가는 돈이 모두 식비, 외식비에 녹아든다.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용돈기입장부터 가계부를 써왔고, 지금은 깍두기 가계부라 하는 10칸짜리 깍두기 노트에 항목별 색을 칠하는 방식으로 가계부를 적고 있다. 변동지출(식비, 의류, 기타, 경조사비) 100만 원 내에서 생활했던 살림 규모가 이번 달은 설을 감안하고서도 100만 원보다도 6,70만 원은 더 쓴 것 같다.
가족 구성원이 늘어난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주로 식비, 외식에서 그런 거라 엥겔지수는 높아졌겠지만 잘 먹고 잘 살며 아프지 않고 건강하면 된다는 생각이 크게 든다.
당분간 외식을 줄이고 설음식부터 냉장고 파먹기에 돌입한다! 다음 달엔 한 달도 짧고 명절도 지나니 생활비도 줄겠지.
내가 가계부를 쓰는 이유는, 모든 기록은 결국 재산이더라.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고 씀씀이를 파악하는데 역시 가계부가 최고다.
7. 의식주) 어머님의 의식주는 자식들이 책임진다.
의는 시누이인 형님, 식은 나, 주는 남편이 책임지고 있다.
즉, 어머님은 이제부터 연로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의식주문제에서 만큼은 걱정 없이 마음 편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8. 돌봄) 어머님 정서적 케어는 내 담당.
애초에 합가의 가장 주원인인 어머님의 정서적인 문제. 정서적 케어를 남편이 하겠는가? 아니다 나다. 서울의 시댁 집을 내놓고 나오시는 데 자가가 아니라서 너무 힘든 문제들이 발생했다. 안 그래도 사별의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는 고통의 최고난도의 스트레스라는데, 어머님은 집문제의 스트레스와 사별의 고통을 이겨내시는 와중에 체중감소와 탈모현상까지 겪으셨다. 집주인의 갑질과 횡포를 듣고 어머님 앞에서 시원한 욕을 랩 하듯 뇌까렸는데 내 속은 열불이 나 타버렸지만 어머님 속은 시원해지셨으리라.
처음 합가 후 삼시세끼 차려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하루에 두 번 믹스커피타임은 좀 더 힘들었다. 주로 어머님의 하소연이 티타임에 길게는 한 시간 넘어까지 이어졌다. 어머님은 당신의 능력과 신앙생활로 잘 이겨내시리라 믿고, 나는 어머님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합가의 의외의 장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존감이 높아짐'
9. 공동체) 한 배를 탄 우리 가족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사별한 어머님과 합가를 해 네 가족이 된 우리 가족.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모든 크고 작은 중대사안의 가족문제 발제를 올려 협의와 협동을 이루려 노력한다. 행복이란 종착점을 두고 항해하고 있다. 물론 가는 길이 항상 험난한 것도, 쉬운 것도 아니라서 재미있기도 한 것이리라.
10. 마음) 그 마음만 변치 않으면 돼.
가족을 생각하는 그 믿음 희망 사랑만 변치 않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