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전: 봄을 기다리는 나목
220119
오전부터 눈이 내려서 덕수궁 구경을 다녀왔다. 날씨가 안 좋으니 사람이 없을 꺼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다들 나처럼 눈구경을 나왔나보다. 가는 길에도, 구경하는 중에도, 함박눈이 계속 내려서 춥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기억에 남을 만한 덕수궁을 보고 왔다.
눈 내리는 덕수궁은 추웠지만 그만큼 운치가 있었다. 덕수궁 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수근 전시를 하고 있었다. 계획하지 않고 왔으나 언제 또 시간 내어 나올까 하여 급 전시회에 갔다. 눈 내린 날 보는 박수근의 <전시명: 봄을 기다리는 나목>. 눈 구경온 사람들이 온김에 전시구경을 하고 가는지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어릴 때 미술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박수근 전시를 본 이후 처음 만나는 박수근인 것 같다. 이번 전시는 박수근의 어린 시절(19세)부터 타계 직전까지 그린 수채화 작품부터 유화작품까지 상당한 양의 그림을 전시 중에 있다.(이 전시는 22.03.01까지)
박수근(1914-1965)은 미대를 나오지 않았음에도 1953년 국전에서 특선을 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전시와 미술전에 참여하면서 작품을 인정받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박수근 작품은 해외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많아서 많은 작품이 해외로 팔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박수근이 작품활동을 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 직후로 서울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있었고, 국민들의 삶 또한 피폐하고 지쳐있었다.
박수근은 전쟁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창신동에서 살았는데, 당시 그는 창신동에 살던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화폭에 담았다. 많은 비평가들이 박수근을 선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화가라고 평한다. 추측컨대 그의 그림이 해외에서도 인기 있었던 이유는 유화라는 익숙한 그림 속에 담긴 당시의 한국의 삶의 모습이 그들에게 이국적으로 다가와서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런 발언이지만, 작가는 누구보다도 당시의 어려웠던 서민들의 애환과 당시 힘들었던 한국의 삶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옮기면서도, 그의 그림을 원하는 구매자들의 취향을 영리하게 캐치한 것은 아닐런지… ㅎㅎ
박수근하면 마티에르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마티에르는 물감을 여러 겹 쌓아 올려서 거칠거칠한 질감을 만들어 내는 표현기법인데, 박수근 작품은 마티에르와 단순한 형태와 색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박수근 작품을 가까이서 볼 때보다 멀리서 바라볼 때 더 눈에 들어온다. 나는 사실 박수근의 마티에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좋은 점은 우리 삶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 자들의 삶을 조명하기 때문인 듯하다.
박수근 전시와 함께 한영수 사진작가가(1933-1999) 라이카 카메라로 전쟁 직후의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또한 전시중이었다. 아래 사진은 그 당시 미군부대로 활용되던 곳인데, 현재는 신세계백화점 본관 건물이다. 작년 겨울 미디어 파사드로 인기몰이를 한 백화점 건물이 당시 미군 PX였다니..ㅎㅎ 신기해서 한 장 담아봤다.
눈 구경 하러 덕수궁에 갔다가 박수근 전시까지 본 즐거웠던 하루였다. 방학에 관광지에 가서 전시까지 보니 여행하는 기분이 났다. 방학이면 종종 해외여행을 가곤 했는데, 코로나로 나가질 못해 여행 향수병에 걸렸었는데.. 여행이 멀리있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