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첫 발레 Shifting Symmetries

feat. 빈 오페라하우스

by pig satisfied

지난겨울, 비엔나 여행 중 올해 첫 발레 공연을 봤다. 내가 머무는 동안 볼 수 있는 공연은 Shifting Symmetires라는 컨템포러리 발레 뿐이었다. 2월에 갔다면 카멜리아 레이디를 볼 수 있었을 텐데, 한 달 차이로 놓쳤다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도대체 얼마나 계획적이어야 여행 중에 보고 싶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걸까. 컨템발레는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서사가 없다는 점에서 지루할 것 같아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안 보면 후회할 것 같아서 티켓팅을 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비엔나 오페라극장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가 될 것 같았다.

공연 며칠 전이라 티켓이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좌석이 꽤 남아 있었다. 좌석 선택을 하면서 중앙 뒤쪽 좌석과 박스석 앞자리를 두고 고민이 컸다. 창구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같이 고민해 줬는데, 중블의 경우 단차가 거의 없어서 앞사람에 따라 시야가 가려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나는 체구가 작기에(상대적으로..!) 시야 방해를 많이 받을 수 있다며, 박스석을 추천했다. 박스석은 사이드지만 맨 앞이기에 고개를 빼서 보면 더 잘 보일 거라고 하여(이것은 큰 오산이었다), 박스석 맨 앞자리로 예매했다.

발레 공연 당일엔 저녁 공연을 위해 하루 종일 에너지를 아껴두었다가, 공연 시작 40분 전쯤 극장에 도착했다. 오페라 극장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하고 웅장했다. 지금까지 갔던 오페라하우스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던 것 같다.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 내부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박스석 관람은 처음인 yh은 박스석 관람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 확실히 박스석이 주는 묘한 즐거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공연이 시작되고 금방 끝났다. 맨 앞자리긴 했지만, 사이드 쪽이라 시야가 상당히 제한됐다. 고개를 빼면 공연을 잘 볼 수는 있었는데, 그러면 내 옆 박스석 관객의 시야가 가려져 고개를 뺄 수도 없었다.. 시야제한석 같은 R석을 구입했다는 사실에 공연 내내 슬펐다.

오페라 하우스의 메인 커튼
오페라 하우스 공연장 풍경

게다 공연도 상당히 낯설고 어려워서 쉽지 않았다. 컨템 발레는 처음이었는데, 예상대로 서사가 없으니 집중이 어려웠다. 그래도 감상이 ‘그냥 어려웠다’로 끝나면 억울하니, 팜플렛을 바탕으로 감상을 남겨본다.

Shifting Symmetries은 총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된 컨템 발레다. 첫 번째는 안무가 한스 반 마넨(Hans van manen)의 콘체르트탄테(Concerttante)로, 인간관계의 긴장과 균형이 주제다. 8명의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위치를 통해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긴장과 대립, 조화를 보여준다. 실제로 남녀 무용수들이 서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유혹, 친밀감, 거절, 수용과 같은 미묘한 감정들을 안무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사실 설명 없이는 그렇게 안 보였을 거다).

두 번째는 윌리엄 포사이드( William Forsythe)의 Inter Middle, somewhat elevates. 무용수들의 위치와 위치의 이동과 전환을 통해 힘, 경쟁, 긴장, 고전적 아름다움의 해체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음악도 전자음악이고, 안무도 굉장히 도발적이다. 평소 발레하면 떠올리는 우아한 발레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마지막은 조지 발란신의 브람스-쇤베르크 콰르텟(Brahms-Schoenberg Quartet)이다. 조지 발란신은 발레 덕질을 하면서 워낙 많이 들은 이름이라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음악부터 당황스러웠다. 이 작품은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를 쇤베르크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곡에 맞춘 추상발레다. 나는 당연히 ‘브람스’라는 이름만 보고 서정적인 작품을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팜플렛에 보니 발란신은 쇤베르크 음악의 복잡성과 긴장을 안무를 통해 시각화하고 싶었다고 한다..ㅋㅋㅋ 서사를 벗어나 순수하게 음악 자체를 몸으로 표현하는 발레를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이 의도라는데, 즐기기에는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비엔나 국립발레단 2025 shifting symmetries 커튼콜

그래서 컨템발레를 본 한줄평은 ‘어려웠다’..ㅋㅋ 일단 음악부터 어려웠다. 내가 익숙한 클래식 발레의 음악은 조화롭고 서정적인데, 컨템발레의 음악은 불협화음처럼 들리고, 예측이 불가능해 자꾸 긴장감이 생긴다. 안무도 아름답고 우아하기보다는 복잡하고 예측불가능게 흐르는데, 감상이 쉽지 않았다. 이해해 보자면, 현대 사회에 내재된 불안이나 두려움, 혼란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아직 나는 컨템 발레가 재밌기보다는 난해하게 느껴진다.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박스석에서 우연히 비엔나에서 사시는 한국 분을 만났다. 공연이 끝나고 그분이 남긴 오늘의 한줄평이 잊히지 않는다. “오늘 공연은 맨 뛰기만 하고 재미가 없네요.” 라며 유유히 사라지셨다..ㅋㅋㅋㅋㅋ 나만 재미없게 느낀 게 아니라는 점에서 위로를 받았다. 전에 커뮤니티에서 컨템발레는 안무가의 의도를 알고 보면 어느 순간 빠지게 된다던데, 나에게도 그런 희열을 느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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