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1)
아경은 자신의 가정사에 관해서는 남들에게 얘기하기를 꺼렸다.
<나의 기쁨은 질투가 되고, 나의 슬픔은 약점이 된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불행으로 다른 이가 <나는 쟤보다는 행복해>라며 기분이 좋아지거나 위로받는 것도 싫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단다.
“남의 고통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남을 고통스럽게 만들면 훨씬 더 기분이 좋다. 냉정한 말이지만, 강력하고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원칙이다.”
그리고 실제로 남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직장동료였던 D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남의 불행을 약점으로 만들어서 깎아내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이었다.
아주 상냥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동료들에게 접근해서 입을 열게 만드는 재주도 있었다.
마침내 무엇인가 알게 된 D가 아경에게 달려와 희열에 눈을 빛내며 누군가의 불행을 귓가에 속삭여댈 때마다 아경은 D가 아경의 불행을 남들에게 말하며 즐거워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경은 그런 D가 날이 갈수록 싫었지만, 가까이 두고 지켜보았다. 일종의 감시이자 자극이었다.
자신의 가정사를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아경은 D를 보며 새삼 깨닫고는 했다.
아경은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평범한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란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무도 그녀의 진실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오십을 넘고 보니 아경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사실 갱년기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인지 이제는 자신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본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판 붙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퇴사하고 인간관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된 것도 한몫했다.
D를 만난다면 “그래, 그렇게 남의 불행을 까발려서 많이 행복해졌니?”라고 묻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꼭꼭 숨겨두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곪아서 악화되고 있으니, 치료를 위해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경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이 깨면 기억이 전혀 안 난다는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니체가 말한 <남을 고통스럽게 만들면 훨씬 기분이 좋다>는 것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었다.
어린 아경은 술 취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막히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병약한 아내와 어린 자식을 때리면서 세상살이에서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를 푸는 아버지는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자 가정적인 사람처럼 굴었다.
아경이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것은 소름 끼치는 아버지의 이중성을 어려서부터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 술 때문이라고 믿으며, 어떻게 하든지 남편의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고 삼 남매를 잘 키워내고 싶어 고군분투했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어머니는 아경이 초등학교 때 암에 걸렸다.
어머니의 가족력을 살펴보아도 그렇게 이른 나이에 암이 발병한 케이스는 없었다.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다섯 명의 친자매들처럼 장수를 누렸을 것이다.
유난히 암울하고 추웠던 그 해 겨울, 어머니는 수술을 받았다.
1980년대 광화문에 위치했던 원자력 병원에서 아경은 투병 중인 어머니의 곁을 밤새 지켰다.
천신만고 끝에 어머니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 중에는 아버지도 음주와 폭력을 자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삼 남매가 성인이 된 이후에야 음주는 여전해도 폭력은 잦아지기 시작했다.
아경은 늘 지옥 같은 집을 탈출할 날만을 꿈꾸었다.
그러려면 경제적 독립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작가의 꿈 따위는 접고 취업이 잘 되는 분야를 공부한 이유였다.
마침내 계획대로 직장을 구하는 데 성공했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사업을 한다고 일을 벌였다가 번번이 말아먹는 아버지로부터 마지막 남은 집을 지키겠다고 꿈쩍하지 않았다.
그 시절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이미 벗어난 상태였고, 남동생은 군대에 가 있었다.
아경은 어머니 혼자 아버지 곁에 두고 떠날 수 없어 고심했다.
그동안 아경은 아버지와 한 집에 있어도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고, 말도 섞지 않았으며 무조건 피해 다녔다.
아버지는 아경에게 구구절절 변명을 적은 반성문을 내밀며 용서를 강요했다.
지난 폭력에 대해 아경에게 사과해서 풀고 이제부터 아경이 벌어오는 돈도 챙기고 아경을 앞세워 남들에게 위신도 세우고 싶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아경은 회사에서 근무 중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친구>라는 거들먹거리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휴가 중인 아경의 사무실 전화를 대신 받은 선배가 <아버지 친구>라는 사람에게서 불순한 의도를 느꼈다고 조심하라고 걱정해주었다.
그리고 술 때문에 업무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어 회사에서 나온 아버지는 사업한다고 설치고 다녔지만 능력도 없고 귀가 얇아 번번이 사기를 당했고, 주식 투자에서도 큰 손해를 본 상태였다.
아버지의 그런 속내를 꿰뚫은 아경은 아버지의 사과를 거절하고 과거의 폭력을 용서하지 않았다.
아경은 그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굳게 믿었다.
아경이 완강하게 거부하자, 아버지는 공격을 시작했다.
다행히 예전과 같은 폭력은 쓰지 않았다.
아경이 경찰을 불러 자신을 망신 주고 진단서를 제출해서 처벌해 달라고 요구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아경은 착한 아내와는 확연히 다른,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아 아버지라도 폭행죄로 신고할 수 있는 못된 딸이었다.
그래도 아경이 너무 괘씸해서 견딜 수 없었던 아버지는 아경의 회사에 가서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했다.
즉, 아버지가 예전에 술에 취해 좀 때렸다고 자식이 되어서 냉랭하게 대하는 아경의 행태를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망신을 주면 네가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 것 같냐”
아경은 아버지의 협박에 “회사를 그만 두면 되니,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나오자 아버지는 포기했다.
아경이 벌어오는 돈이 탐났기 때문이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딸인 아경의 돈은 바로 가장인 아버지 자신의 것이었다.
훗날 아버지는 동생을 통해 아경에게 <네가 벌었다고 다 네 돈이 아니다> 또는 <시집을 가려거든 ○○으로 혼수 하고 나머지 돈은 다 맡겨두고 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경의 대답은 <어디 마음대로 해보세요. 소송을 해서 뺏어가 보시던가요. 끝까지 해보자고요>였다.
그것은 아경이 집을 떠난 몇 년후의 일이고, 그 전에 그렇게 자신을 용서하라고 아버지가 아경을 압박하던 그때에 어머니의 암이 재발했다.
13년 만이었다.
어머니를 데리고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경의 계획은 그렇게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