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신용(3)
아경이 신입사원 때 일이었다.
이제 직장생활을 막 시작해서 뭘 잘 모르는 시절이었고 상사와 선배들도 하나같이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팀에 소속된 선배가 아경에게 보증을 부탁했다.
아경은 해맑은 표정으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즉각 답했다.
“그런 것은 엄마가 다 알아서 하시거든요.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그것은 진짜였다.
20대 중반이지만, 아경은 월급통장 통째로 엄마에게 맡겼다. 그리고 용돈을 받아썼다.
그 말에 선배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엄마, 엄마 하냐는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냐, 됐어. 물어보지 마.”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한 마디를 남기고는 휙 뒤돌아 가버렸다.
사실 어느 엄마가 딸에게 직장선배의 보증을 서라고 허락하겠는가.
아경에게 딸이 있었다면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 선배 전화번호 당장 달라고 했을지도 몰랐다. 아주 혼을 내주겠다고 말이다.
게다가 아경의 엄마는 주변에서 보증으로 인한 좋지 않은 결과를 보신 적이 있어서 질색하셨다.
보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자칫 잘못되면 본인은 써보지도 못한, 한 번도 구경도 못 해본 돈 때문에 남은 평생 빚에 시달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삼 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아경의 어머니는 먼 친척이 사업을 한다고 보증을 부탁했을 때도 완곡하게 거절하셨다.
선배가 별로 친하지 않은 한참 어린 신입에게 보증을 부탁할 정도면, 그 사정도 알 만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절 이후에 아경과 선배 사이가 나빠졌냐고?
그럴 리가, 회사에서는 업무만 잘하면 된다. 선배 하고도 업무를 통해 연결될 뿐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른 거절이 효과적이었다.
젊은 시절 거절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때마다 아경은 '엄마 찬스'를 적절하게 잘 사용했다.
엄마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성역 같은 거랄까.
세월이 흐른 후에 선배의 사정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무능력한 남편이 그렇게 사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믿고 일을 벌이고 망하면 다시 새로운 일을 벌이고 또 망하면 또또 일을 벌이고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론은 빠르고 분명한 거절이 관건이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엄마 찬스'를 쓰기에는 부끄러운 나이가 되어서 아경은 거절하는 연습을 했다.
"안돼", "싫어"라고 말이다. "꺼져!"도 연습했다.
하지만 아경도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