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파리지엥

솔직 담백 프랭크인을 만나다

by 써니스타쉔

파리지엥
여유 있는 걸음으로 샹젤리제 Champs-Élysées 거리를 걸으며 카페 Café에 앉아 크로와상 Croissant과 카페오레 Café au les를 마시며 신문을 볼 것 같은 사람들. 파리지엥에 대한 나의 느낌은 아마 대개 한국인이 떠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프랑스를 빛낸 까뜨린느 드뇌브가 퐁네프 다리에서 열연했던 <퐁네프의 연인들>의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감미로운 느낌이 잔상처럼 남아있는 파리.


“난 루브르 박물관 가서 그림 하나만 바라보며 종일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아요!”


친구의 말에 우리는 바로 파리행 티켓을 사며 일주일간 파리지엥이 되어 보기로 했다. 첫 파리 여행도 지인의 영향으로 단박에 결정했었는데, 계획이 없어도 그냥 파리에 앉아있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마음이 무작정 파리행을 항상 감행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은 파리에서 앉아있을 만한 여유는 전혀 없었고, 아침식사도 이동하는 중에 때우기가 일수였다. 하루 기본 2만 보씩 걷느라 지쳐 여유를 부릴 틈은 전혀 없었지만 커피의 쌉싸래한 목 넘김과 크로와상 속살의 부드러움에 감탄하며 행복해했다.


와우! 파리 Paris
절대왕정 마지막 시기 삼부회에 발언권이 없었던 노동자들이 발언권을 얻고자 일으킨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관식을 치렀던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흐르는 세느강변을 따라 역사의 가치를 빛내주는 루브르, 오르세 박물관과 에펠 타워가 있는 근대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물론 프랑스에 연간 9,000만 명(2018년도 기준)이라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을 테지만 철 모르고 방문했던 파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프랭크 Frank

3세기 로마시대 게르만족의 일부 무리 중 라인강 Rhine과 루아르강 Loire 사이의 영토를 다스렸던 민족을 지칭했던 프랭키 Franci족이 현재 프랑스인의 기원이 되었다. 프랭크 족은 할 말이 있으면 직언을 날렸던 굉장히 솔직한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어 미국 등지에서 직언을 말할 때 프랭크 인처럼 말하다 Frankly speaking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솔직하게, 직언하다는 영어로 정착했다.

2019년 12월 6일 - 연금개혁 파업으로 곳곳에 교통수단이 마비되었지만 후브르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목적지 Destination
파리에 첫 방문했던 2007년에는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가볍게 마친 후 이탈리아 로마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가는 2주간 일정을 계획했다. 당시 나는 터키를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함께 공부하며 만난 지인과의 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터키 일정은 다음을 기약했는데 7년 후 인 2014년도에 출장차 터키를 방문하고 연달아 2번 더 방문하면서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2007년 9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과 함께

로마를 먼저 방문한 덕분인지 아니면 인류가 정착한 이후 문화와 학문의 최대 전성기를 이루었던 문화의 발상지에 대한 위대함 덕분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산물에 매료되었던 나에게 로마 이후 파리 방문은 현대와 가까운 근대 역사를 간직한 곳인 탓에 첫 프랑스 방문은 이탈리아만큼 반갑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2년 전 프랑스에서는 맥도널드에서 버거를 하나 주문하는데도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프랑스어를 못하는 아시아인을 대놓고 무시하는 풍조가 강했다.


훨씬 이전인 2003년 1월 독일 베를린에 있던 베를린 공대와 훔볼트 대학교 학생이 많이 머물던 기숙사 dormitory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당시 프랑스 유학생 커플 남녀가 영어도 못하는 우리를 매일 아침마다 무시했던 덕분에 프렌치라면 이를 갈게 되었던 프랑스인과의 첫 만남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던 영향이 강했던 덕분이기도 하다.

2007년 9월 9일 방문 때.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타기 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명소로 알려진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은 놓치기 힘든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고 센 강변을 따라 유람선을 타보는 것이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는데 위의 네 가지는 모두 해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보다는 멋스러움에 치중하던 때였다.

2007년 9월 노트르담 대성당과 센 강변
센 강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에펠탑


조화
인상파 Impressionist 화가 에두아르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일본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던 저패니즘Japanism 덕분인지 동서양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였던 선조들의 노력 덕분일까. 서양 문물을 일찍 개방한 일본은 유럽으로 일본문화를 자연스럽게 전파하며 서양인의 마음속에 극동지역 하면 일본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가 저패니즘의 미니멀리즘을 적용시킨 프랑스 침실


물론 지금은 KPOP의 영향으로 2017년도 프랑스 대학교에서는 최초로 한국어 전공이 개설되기도 했고, 더 이상 우리를 보며 저패니즈 Japanise, 차이니즈 Chinese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과거 선조들의 수용하는 것을 배운 것인지 관광객이 파리 인구보다 많이 방문하는 덕분인지 상대방에게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을 보며 선진국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한국인들의 버킷리스트 여행지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행으로 많이 방문하는 국가다. 그 덕분에 곳곳에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서비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2007년에도 센 강 유람선에서 한국어 서비스가 되는 것을 보며 놀랐던 것을 생각해 보면 십여 년간 일어난 변화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