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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스타쉔 Dec 03. 2018

인문학 책 (1) 중국을 탐하다 #1 <야망의 시대>

기획과 전략 사이 보는 눈을 키우다

# 중국이라는 나라

성룡(Jackie Chan)의 날렵한 몸놀림, 민간인의 정의까지 구현하는 <포청천>이 1980년대 내가 느낀 중국에 대한 이미지였다. 최근 업무 중 대표님께서 하신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내 인생의 영화가 있다면 어떤 영화가 떠오르시나요?"

식전 짧은 대기 시간 마블 영화광인 대표님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질문이었다.

"갑자기 물어보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인생>이에요."

중국 영화 <인생> 포스터

공리(후우꿰이 역)가 주인공으로 나왔었고,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Lifetimes 또는 To live로 번역되어 1995년 상영되었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중국의 시대상을 그린 이 영화는 한 가정의 굴곡사를 통해 격변하는 사회상을 함께 그려냈고,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나에게 잔잔한 감동과 중국에 대한 시선을 다시 쓰게 했다.


그 후 중국이라는 나라는 가끔씩 책으로 조정래의 <정글만리>나, <중국 읽어주는 남자> 등의 책으로나, 이전 몸담았던 회사에서 진행했던 중국 요우커 대상으로 기획했던 인천 공항 출입국 대상 이벤트 기획, 타이완 출신의 선생님과 배웠던 몇 차례의 중국어 수업으로 중국에 대한 관심도를 키워왔다.

  


중국어를 전혀 못 하지만 중국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니 요즘 젊은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중국어는 못 해도 중국에 대한 식견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친 중세시대에 관심이 유독 높아 영어 공부를 할 때도 과거 시대극을 많이 보았었는데, 중국에 대한 접근도 동일하게 하기로 했다.

최근 몇 년간 중국 역사물과 현대극을 틈틈이 보면서 깨달은 것은 수적으로 많은 중국인들과 우리를 비교한다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이다.

청나라(1644-1911)를 마지막으로 황제 집권 국가는 막을 내렸고, 중화민국(1912-1949)과 중화인민공화국(1949년 10월 1일)이 차례로 들어섰다. 먼저 언급했던 영화 <인생>은 청나라 말기 물려받았던 부를 쥐고 있던 한 가족이 중화민국(국민당과 공산당 체재)에서 중화인민공화국(국민당을 타이완으로 축출하고 공산당이 건국)을 거치면서 겪게 되는 사회 이념 속 사람과의 관계가 혼동 속에서 불신을 낳고 이를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한 가족이 겪는 행복과 불행을 인생이라는 카테고리에 담았다.


#야망의 시대

최근 중국 독서 읽기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야망의 시대(Age of Ambition)>은 미국의 <뉴요커>지와 <시카고 트리뷴>지 기고가로 활동하던 기자 '애번 오스노스(Evan osnos)'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 특파원을 지내며 기록했던 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중국, 한국인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본 그의 의견이 사뭇 궁금해졌다.



중국은 오늘날 자기모순적인 모습으로 분열되어 있다, 세계에서 루이뷔통 제품을 가장 많이 구매하고,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를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 동시에 광고판에 <럭셔리>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당이 집권한 나라이다.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와 가장 가난한 도시 간의 기대 수명과 소득은 뉴욕과 가나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또한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두 개를 보유하고 미국보다 많은 인구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나라지만 사람들의 자기표현을 검열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고 최근에는 이러한 투자 비용을 다시 두배로 늘린 나라이다.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도시화되고, 번영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감옥에 있는 유일한 나라 이기도하다.

- 프롤로그 15p 중에서


#1부 "부"

저자의 인터뷰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스토리는 지극히 사실적이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극한 경험을 한 개인들의 삶과 중국의 정치적인 배경과 연결되어 있다.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치던 린정이 대위는 본인의 생각을 아무에게도 공유하지 않고 중국 대륙으로의 망명을 시도하고 그의 신념을 지키고자 발버둥 쳤다. 가족들은 가족 중 전도유망한 그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학업 대신 노동을 택했고, 그는 그런 혜택과 더불어 성공한 군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가 보는 미래는 변화하는 중국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중화 인민 공화국은 북한보다도 가난했고, 1인당 국민 소득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수준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당시는 덩샤오핑이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지 아직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일흔다섯 살이 된 그는 설득력과 솔직함을 겸비한 정치가였고, 마오쩌둥 주석에 의해 거듭해서 축출되었다가 두 번의 복권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중략-덩샤오핑은 자신의 지식적 한계를 인정했다."p24


1977년 여름, "<뉴욕 타임스>는 "무의미한 대장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한때는 어디에나 존재했던 당이 거의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논평했다."p36

마오쩌둥의 경제 비전으로 빈곤해진 농부들이 집단 농장을 분할해 농사를 짓고 정부에서 정한 양보다 많은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이전보다 스무 배에 가까운 소득을 올리게 됐다. 이후 1979년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지주>나 <부농>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97년 7월 1일. 영국이 1842년 제1차 아편 전쟁에서 승리한 뒤로 줄곧 지배해 온 홍콩 섬을 반환하기로 한 날짜이다. 홍콩 반환은 중국의 위엄 회복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뉴욕 타임스>가 "무의미한 대장정"이라는 기사를 실은 지 20년에 걸친 개혁과 서구화를 겪고 나서 중국인 작가들은 이제 할리우드 영화와 맥도널드, 미국적 가치관에 맞서고 있었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좋은 예다. 중국의 대표적인 국영 대중 매체인 <인민일보>의 한 사설은 중국인들에게 <애국심이 우리에게 사회주의 체제를 사랑하라고 요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p36-37 인용


작가가 알게 된 맹인 마사지사 '천광정'은 둥시구 마을에서 시각장애인이 받을 수 있던 침술과 마사지 교육 외에 법률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남자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인들이 자신에게 불만을 표시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을 거역했다가 강제로 낙태를 하거나 불임 수술을 받은 여성들의 사례를 모으고 있었다.

 


한 자녀 정책의 폐단은 실제 이렇다고 한다. 독서 모임에서 들었던 한 통쉐의 말을 빌려본다.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10대 전후의 아이들은 대개 등록이 안 된 자녀일 경우가 많다. 특히, 형제 중 전도유망한 가능성이 있는 한 아이만 등록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식당이나 막노동 같은 일자리에 배치되어 10살도 채 되기 전부터 일을 하며 평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한다.


공산당의 통제 속에서 20여 년간의 자본주의 물결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인권', 자본주의의 '소비', 자유의지의 '표현' 등에 대한 갈망은 영화, 책, 소비행태를 통해 꾸준히 거듭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태어난 1970년대 이후 세대는 더 이상 <우리 노동 조직>이나 <우리 가족>과 같은 부모가 사용하던 복수명사보다는 <나>에 집중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골 농부의 딸 공하이옌은 불의의 사고로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그녀를 업고 학업을 시켰고, 병원비 감당을 위해 공장에 취직했다가 편집장이 된다. 공순이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베이징 대학에 입학한다.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까지 밟았지만 무언가 빠진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바로 연애였다.

대만 영화 <청설> 중 한 장면


"중국인의 생활상에 나타난 그 모든 대변동 중에서도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만큼 개인적인 변화는 없었다. 중국에서는 수 세기 동안 동네 중매쟁이나 부모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를테면 <대문 크기가 엇비슷한 집안의> 젊은이들끼리 짝을 지어 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예비 신랑과 신부의 역할은 극히 미미했다."p67


공하이옌은 중매가 아닌 스스로를 광고하고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웹사이트(www.jiayuan.com)를 열고 -처음 사이트 명칭은 love21.cn- 싱글남녀 파티까지 주선하는 등 큰 인기를 끌어 사업을 성공에 이끌었다. 공하이옌 역시 남편을 자신이 연 웹사이트에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하고 2006년도 그녀의 데이트 서비스에 등록된 이용자 수는 1백만 명, 사업 7년째 5600만 명에 이르렀다.

공하이옌은 작가에게 <중국의 결혼 시장에서는 남자와 여자, 석사 학위가 있는 여자, 이렇게 세 가지 종의 인간들이 살아남으려고 애쓴다>고 설명했다.


심천 야경

최근 출장으로 다녀왔던 심천(Shenzen)은 서울보다 더 번화한 도시였다. 높은 빌딩의 불빛쇼를 매일 밤마다 열고, 각 지역에서 모여든 이민자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심천은 누구보다도 이방인에게 배타적이지 않은 도시였다. 청결함이나 친철함도 한국과 견주어도 차이가 없었고, 쇼핑센터의 화려함이나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어느 곳보다 빨랐다.

희망은 시골에 나 있는 소로 같은 것이다. 원래는 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 길이 된다.

- 루쉰, 중국의 현대 작가


"야망의 시대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요구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접하게 되는 무지막지한 건배 문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웨이량 대인 관계 연구소>라는 하얼빈의 한 야간 학교에서는 초보 기업가들을 위한 <음주 전략> 과목을 개설했다(팁을 하나 주자면, 건배한 다음 조심해서 입속에 든 술을 찻잔에 도로 뱉어 내시라). 배울 수 없는 것은 돈으로 해결되었다. 장다중이라는 가전 업계의 한 거물은 세 명의 <독서 직원>을 고용해 평소 자신이 읽고 싶었던 책을 요약하도록 시켰다." p94

베네치안 마카오

영어 열풍이 불면서 오프라 윈프리보다 더 유명하다는 "소리치는 언어로서의 영어"로 거의 숭배받다시피 하는 영어 강사 '리양'. 이발사에서 <도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마카오 도박판에서 연승 행진을 거둔 '시우윈핑'. 리투아니아 출신 택시 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아델슨'은 1979년 컴퓨터 산업 박람회인 컴덱스를 성공적으로 개최 후 마카오 두 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해 일대에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그대로 재현한 24억 달러짜리 베네치안 마카오를 개장했다.

부를 거머쥔 중국 내 <먼저 부자가 된 사람들>은 예술품과 해외여행에 눈을 돌렸고, 중국 특유의 집단 열풍이 이를 북돋아 또 한 번의 붐을 일으켰다.


"1877년 청나라가 쇠약해지고 서구 열강이 발흥할 때 중국의 개혁론자들은 '옌푸'라는 젊은 학자 한 명을 잉글랜드에 파견해서 영국 해군력의 비밀을 조사하게 했다. 옌푸는 영국 해군의 힘이 무기가 아닌 지식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허버트 스펜서,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찰스 다윈을 비롯한 서양 <자연도태>라는 훨씬 극단적인 단어로 바뀌는 등 그의 번역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엄청났다. 옌푸와 그의 동료들에게 진화는 단순히 생물학 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학이었다. 중국의 선구적인 개혁론자 량치차오는 중국이 <가장 잘 적응한 나라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구 사회를 지나치게 열광적으로 동경하는 태도에는 대가가 따랐다. 20세기 초 행동주의자들이 유럽의 개인주의 개념을 포용하고자 했을 때 그들은 <가짜 외국인 놈들>이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마오쩌둥이 집권 말년 미국과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전까지, 서구 사회를 동경하는 태도는 처벌받아 마땅한 죄였다.

파리의 세느강변

 그럼에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구 사회는 점점 더 가능성과 자기 창조의 땅으로 그려졌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유럽으로>라는TV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푸젠 성 출신의 가난뱅이 남자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그는 넝마나 다름없는 티셔츠 차림으로 파리로 가 몇 개월 만에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었다. 드라마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 남자는 한 무리의 프랑스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부터 2년 뒤 파리의 새 지도에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요? 그러고는 건축물 모형을 덮은 천을 걷어 내면서 선언했다. "아름운 센강변에 동양적인 화려함이 가득해질 겁니다. 바로 차이나타운과 무역 센터 덕분이죠!" 드라마 속 프랑스인 청중들 사이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p140-141


<야망의 시대> 1부 마지막 이야기는 저자가 중국인들에게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단체 유럽여행에 동참하면서 겪게 되는 여행 방법과 사람들에 대한 경험담이다. <2부 진실>에서 펼쳐질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음을 기약할까 한다.


현재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정부 휘하에서 언론도 통제되고 있으며, 서양문물 중 일부는 여전히 차단 상태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기반 속 정부가 움직이는 개혁 예를 들면, 전기차 보급과 관련해 2013년도 1만 대 꼴이던 것이 2017년도에는 약 60만 대가량 보급되었고, 심천시만 하더라도 모든 버스를 전기버스로 교체하고 있는 것과 같은 개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성장세라고 할 수 있다. 체재의 변화는 정부가 주도하고 그 변화의 소용돌이는 사람들이 일으킨다. 변화의 주도에 있는 젊은 층은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서양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볼 수 있는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자본'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중국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렵겠지만, 이런 변화의 원인과 근간을 이해한다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배울 것이 더 많아진 나라 중국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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