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미, 나와 너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 ‘관계’

관계를 대하는 나의 관점

by 써니스타쉔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을 읽으며 평범하거나 일반적이지 않는 나 자신을 미화시키곤 했던 사춘기가 떠오른다. 이번 프로젝트로 완전히 잊어버렸던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200번도 넘게 읽었던 <갈매기의 꿈>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는 내내 조나단의 어머니는 그에게 왜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지 못하는지 물었다. 그 이유는 조나단이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는 것보다 그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난 그저 뼈밖에 없는 조상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엄마. 나는 내가 하늘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어요. 그뿐이에요. 정말 단순하지 않아요? 그게 바로 진실이에요. 단순하고 간단한 것. 다른 이들처럼 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보다 행복은 스스로의 한계를 탐구하는 데서 와요.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에서부터요.

-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의 꿈> 중에서



나는 타인과 쉽게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항상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대기상태였다고나 할까.

나의 자아는 고집스러움으로 똘똘 뭉쳐졌고, 그 때문인지 나에게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정말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세상을 둥글게 살아야지”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둥글지 못하다. 좋아하면 좋다고 하고 싫어하면 싫다고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도무지 나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 보인다.


호불호가 분명했던 성격이었던 덕분인지, 학교, 직장,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나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아군과 적군이 동시에 많은 편이기도 하다.


1980년대만 해도 분명한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고, 특히 남성 여성을 구분하던 시기여서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란 어려웠다. 2000년대 이후 글로벌 물결 속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이런 부분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사회적 제도, 틀에 갇힌 생각을 벗어던지자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때에도 내 성격은 변하지 않았지만 환경의 변화로 관점이 달라지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어필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오해도 많이 산다. 잘난 척한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기에 스스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타인이 보기엔 나르시시즘 같아 보인다고 한다.


회사에서 정말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혀 회사에서 잘린 경우도 있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랐다. 잘못이라기보다는 나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성향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우쳤다.



관계는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사회 속 혼자만 추구하는 것이 있으면 별난 존재가 되기도 하고, 환경이 바뀌면 과거에 정당하다고 느껴졌던 것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평가가 바뀐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 늘 바뀌는 것처럼.



나는 관계를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환경, 관점의 변화에 따라 관계는 늘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냥 현재에 집중하고 싶고,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스쳐 지나갈 지라도 지금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싶다.


나를 그냥 한 사람, 한 여자, 팀장, 관계자로 대하며 가끔 ‘써니’라는 인물은 OO 한 사람이었어라고 그들의 관점에서 인식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