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햇님 Aug 26. 2021

시골집은 내게 노동을 하사했다

나를 웃고 울게 만든 셀프로 집 고치기


월, 수, 금 아이가 등원하면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무용 학원에 다녀온다. 도시에서도 해보지 않은 발레 핏 스트레칭 동작을 따라 하며 사시나무 떨 듯 바들대는 나. 그 모습을 거울로 마주하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는다. 그렇게 한 시간 뒤 나는 흥건히 땀에 젖은 채 타박타박, 휘청휘청 귀가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면 슬쩍 마스크를 내려 흠뻑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마스크를 고쳐 쓴다. 벼 이삭은 총천연색을 자랑하고 깻잎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고소한 향을 내뿜는다. 오늘은 아침부터 내내 비가 내리고 있는데, 벼 줄기 아래로 촘촘히 달린 낟알들이 누렇게 익기 시작했다. 가을장마 이후에는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해질 것 같다.




막 내려와 폭풍처럼 노동을 일삼던 때와 달리 지금은 아주 고요하게 일상이 흘러간다. 여름은 끝나가고, 느린 나는 한층 더 느려지고 있다. 귀촌을 결정하고 내려올 때만 해도 사실 뾰로통한 표정을 자주 지었다. 집수리를 어서 끝내고 외주로 받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에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철거부터 페인트칠, 황토 바닥칠과 한지 장판을 까는 일까지 다 직접 하겠다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우리 집은 지붕 수리와 부엌, 화장실 교체, 기름보일러 교체 정도만 읍내에 있는 업체에 맡기고 나머지는 거의 셀프로 고쳤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사서 고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일부러 남편에게 비협조적으로 굴었다. 이렇게 도와주는 이가 없어야 주머니를 열고 도움의 손길을 어딘가에 뻗칠 것 같아서.  


이사 오고 한 달 정도는 정말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잠깐 동안은 집 안에 텐트를 치고 생활했고, 눈을 뜨면 노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 하나가 마무리(그래 봤자 벽과 바닥 칠이 끝난 정도)되고서 텐트를 접었다. 장판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 그렇게 안락할 수가 없었다. 신발을 신지 않고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다. 단칸방 세 식구처럼 우리는 그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고, 나란히 누워 잤다. 방문을 열고 나서면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공사판이 펼쳐지는 기이함,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정돈된 집, 아파트를 버리고 온 후회를 그때 몰아서 다 했다.           

나와 아이에게는   정도지만, 사실 남편은 우리보다 먼저 내려와 계속 집을 고쳤다. 벽지를 뜯어내고 규조토를 바르고, 바닥에 황토를 발랐다. 여름에도 지금처럼 자주 비가 찾아왔기 때문에, 우리  황토는 더디게 말랐다. 한지는 두세  초벌로 바닥에    마르면  위에 마지막으로 한지 장판을  발라 깔고, 옻칠을 두어  해야 한다.   뭔가를 칠하거나   1.5 걸려 마른다고 치면 노동과 기다리는 시간은 엇비슷했던  같기도 하다.

아무튼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집 고치는 방식의 디테일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의탁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이제껏 그런 인생을 살았으니까. 괜히 익숙하지도 않은 일에 손을 댔다가 돈 낭비, 시간 낭비를 할 바에야 그게 더 현명하지 않나?



그런데 이 고단한 작업이 도시에서 막 내려온 내게 무엇을 선사했냐, 바로 꿀잠이었다. 아이를 낳고 몇 년간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크느라 자주 깼고, 나는 나대로 긴장하느라 여러 번 눈을 떴다. 내일 할 일을 곱씹느라 바로 잠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했고, 자도 자도 피곤해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임신해서 호르몬 영향을 지대하게 받을 때, 그때가 마지막 단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9시만 되면 곯아떨어졌다. 고맙게도 아이 역시 좀처럼 깨지 않고 숙면했다. 주위가 항상 조용하고 깜깜해서,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게 전부인 집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을 손보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명상과 같아서가 아닐까 하고 짐작할 수도 있겠다. 밥을 먹고 치우고 목장갑을 낀다. 벽에 편백나무 수액을 뿌린다. 덕지덕지 붙은 벽지를 뜯어낸다. 뜯어낸 벽지를 고이 쓸어 모아 봉투에 담는다. 옆쪽 벽에 편백나무 수액을 또 뿌린다. 심심하면 믹스 커피 한 잔 타서 라디오를 들으며 호로록 마신다. 또 벽지를 뜯는다. 벽을 칠한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다 보면 인체의 시계에 내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 배가 고프면 먹고 힘들면 잠깐 쉬고, 또 움직이고. 그러는 동안 나는 집과 조금씩 정이 쌓였다. 그 사이 마당에 있는 보리수나무는 열매를 주렁주렁 달았고, 성실하게 움직인 우리 세 식구는 조금씩 얼굴빛이 좋아졌다. 그런데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일은 할수록 는다. 특히 마당 있는 집은 끄집어낼수록 일을 끌어안게 된다. 시키지 않아도 움직이다 보면 결국 하루 중 반나절은 집만 돌보다 끝난다.      

나는 그렇게 노동하며 여름을 보냈다. 가끔은 기꺼이, 또 어느 날은 꾸역꾸역. 대체로 기쁜 노동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주인공으로 분해 음식을 만들던 순간들이다. 보리수 열매를 따서 깨끗이 헹군 뒤 씨앗을 걸렀고, 뒤이어 버너에 곰솥을 올렸다. 으스러진 붉은빛 열매는 설탕과 함께 솥으로. 나는 땀을 뚝뚝 흘리며 나무 주걱으로 그것들을 열심이 저어 잼을 만들었다. 옆집이나 윗집 할머님이 주신 오이나 호박, 감자, 머윗대로 휘리릭 반찬을 만들면 조그만 밥상 위에서 불티같이 없어졌다.  



꾸역꾸역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주로 인테리어와 식물 돌보기다. 스스로 취미로 받아들이지 못한 일 앞에서는 항상 주춤하게 된다. 그래도 식물 물 주기는 이제 웬만하면 까먹지 않는다. 고추와 깻잎, 방울토마토, 상추가 열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또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만들곤 했다. 어쨌든 나는 노동하며 지낸다. 시골집이 하사한 이 노동 덕분에 웃는 날도 있고 찡그리는 날도 있다. 이 집을 떠나지 않는 한 이 신성한 노동은 계속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살이의 기쁨과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