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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Nov 02. 2021

자전거와 자동차의 힘겨루기

나는 왜 지금껏 면허를 안 땄을까

면허를 따야지 생각만 하다가 벌써 4개월이 넘게 흘렀다. 여름에는 덥다는 핑계, 가을이 되고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다. 수능을 마치고 스물이 되었을 때부터 이 상태였으니 18년간 미룬 셈이다. 언제나 면허를 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서울에 사는 동안은 솔직히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 들 때면 ‘아, 나도 운전하고 싶다’ 가끔 생각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아,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당당히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용산구와 마포구를 가로지르는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는데,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이 나를 스친 뒤 흩어지며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스라이 사라지는 불빛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주책맞게도 조금 두근거리기까지. 지하철 밖 세상은 늘 꽉 막힌 줄로만 알았던 내가 얼마나 순진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늦은 밤 뻥 뚫린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면허와 차가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장롱 면허라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이제 와 면허 따기에 도전하려니 시작도 전에 두려움만 가득하다.




시골에 내려와 면허가 없는 불편함이 더 커졌다. 아이가 늦장을 부려 어린이집 차를 도저히 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자전거를 꺼낸다. 그나마 전동 자전거라서 땀을 많이 빼지는 않지만, 밭을 한참 가로지르고 터널을 지나고 거대한 스마트팜 단지 네 동을 다 거치고 옆 마을 입구가 시작되면 거기서부터 큰 교회 두세 개와 마을회관까지 지나가야 어린이집 앞에 당도한다.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20분이다. 돌아올 때 느긋하게 페달을 밟으면 30분 정도 걸린다. 돌아오는 길, 빨리 면허 학원에 등록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돌 지난 아이와 쭉 함께 타 온 자전거. 이제 제법 키가 커서 7월부터는 뒤쪽에 추가로 단 시트에 벨트를 채워 앉힌다.


몇 주 전에는 통장 만들러 읍내에 나갔다가 속이 시꺼메졌다. 그날은 아침부터 잠깐잠깐 비가 내렸고, 일기 예보로는 점심이 지나면 그칠 거라고 했다.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겨우 지나는 우리 마을에서 전동 자전거가 있으면 나는 무적이 된다. 장 보러 다녀올 때도 휙휙, 아침에 무용 학원에 갈 때도 휙휙. 그렇지만 읍내로 나가는 건 좀 다른 문제다. 긴 철교를 지나고부터는 트럭이 급격히 많아지고, 시장 앞을 지날 때는 어르신들이 너무 많아서 자주 내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적고 자전거 길이 따로 나 있는 강변길을 주로 택한다. 단점은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

그날은 오전 중에 느긋하게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고 움직일 예정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한의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아직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다. 내가 비를 불러오는 건지, 치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제법 줄기가 센 비가 내렸다. 근처 식당으로 빨리 옮겨서 우선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비가 잠시 멈춘 듯해 서둘러 밥을 먹고 나왔다. 다시 굵은 비다. 이번에는 카페로 들어가 잠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빗줄기가 시원해서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가 잠잠해지고 나는 다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조금 달리다 보니 붉은 철교를 미처 건너기도 전에 다시 빗줄기가 달라졌다. 강변길에는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어 그냥 그대로 달렸다. 빗방울이 많이 스며들지 않는 재킷을 입고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은행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비를 맞으며 정말로, 정말로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운전면허를 따겠노라 허무한 다짐을 했다. 결국 아직까지 면허 학원에 전화도 안 한 깜냥에.

그날 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하루 종일 비에 쫓긴 일화를 들려줬다. 일본어 단어 중 중요한 순간에 늘 비가 오는 불운의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비를 몰고 다니는 여자, 이름하여 아메온나(雨女)다.


“나는 오늘 완전 아메온나였다니까!”

“너 지금 놓치고 있는 게 있어. 면허를 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문제는 그다음이라고.”


그 말에 나는 순간 합죽이가 되었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지만 드러나게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쭈글해진 내 기분을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날 자면서 꿈을 꾸었다. 운전하며 지그재그로 동네를 다 박고 다니는 최악의 꿈을 말이다.


문제의 그날. 비를 맞아 처량했는데 언제 또 이런 사진을 남겼는지.


친구 만나러 경기도 올라가며 왕복 택시비와 기차비로만 10만 원을 넘게 쓴 날은 내가 한심해서 혀를 끌끌 찼다. 친구도 웃펐는지 밥을 사주더라. 오늘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도 안 누르고 쌩 달리며 속이 다 시원해서 히죽히죽 웃었다. 이대로 쭉 자전거만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자유롭게 잘 다니는 날엔 ‘면허 없어도 괜찮지 뭐’라며 합리화했다가, 사서 고생한 날엔 녹초가 되어 ‘아, 정말이지 몸이 너무 고단하구나’ 한숨 쉬며 면허 학원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지운다… 이렇게 고민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마치 지킬 박사라도 된 듯 괴로워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 우유부단함과 용기 없음에 넌더리가 난다.

진짜 이렇게까지 못난 내가 올해 안에 면허를 딸 수 있을까? 아니, 면허 학원에 등록이나 할 수 있을까? 멋들어진 코너링으로 내 옆을 쓰윽 지나가는 동네 숱한 자동차를 볼 때마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정 안 되면 택시라도 금방 잡아탈 수 있던 도시와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실감한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도심의 아름다움을 완벽히 잊을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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