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sunnyi Mar 01. 2019

쿨하게 한 걸음, 서유미 (2008)

혼란스러운 30대에게 쿨하게 한걸음

원래 이렇게 매사가 씁쓸한 걸까. 마음을 주면 다 떠난다. 내가 원래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지, 그냥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내가 행동을 하는 건지, 변한 건 난데 남 탓을 하고 있는 건지.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를 외치던 때에 마침 쿨하게 한걸음이란 책도 추천받았다. 아 서른셋의 일상 이야기라네, 이거나 사서 심사숙고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그렇게 하소연할 곳도, 위로받을 곳도 없는 일 년에 다섯 번 정도 있는 소주 부르는 더럽게 핫한 밤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극적인 사건의 연속이기보다는,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갖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더 집중적으로 서술한다. 불쑥불쑥 그 감정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 감정들에 아주 크게 공감했고,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아직은 평범하게 세상을 공전하고 있다는 묘한 위로를 받았다.



30대


모든 감정은 극단적으로 부풀어 있었고 커피를 열 잔은 마신 것처럼 쓸데없이 들떠 있긴 했다. 선택해야 할 것은 너무 많았고 그것들이 나중에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 것으로 만들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그에 비해 삼십대는 뭐랄까. 별로 열고 싶지 않은 문이 저 혼자 열린 느낌이다. 궁금한 것도 없고 할 수만 있다면 그 문을 도로 닫고 싶은 심정이다.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져야 하고 시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이십대에는 더 이상 자란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을 만큼 스스로 성숙하다고 느끼지만 삼십대에는 좀 더 성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p.22)


이십대엔 특권이다 누려라 즐겨라 즐겨라 하더니, 이젠 삼십대라고 ‘~을 해야 한다’고 난리다. 왜 자꾸 뭐해야지, 뭐해야 되는 왜 안 하냐고, 아직도 안했냐고 하는 건지. 시행착오는 20대에만 허용되는 그런 특권이었건가. 앞 숫자가 바뀐다고 안개가 걷히면서 네 미래는 앞으로 이 것이다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철부지였던 20대와 다른 솔로몬급 혜안과 성인군자 같은 배려와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 도대체 바라는 게 많다. 그니까... 내가 피터팬이 아니라... 더 이상 천방지축일 수 없다는 건 아는데..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강요하는 건 좀 그러니까... 그래도 사람은 바뀌면 죽으니까... (먼산)



고백하건대 요즘 나는 작은 일에도 자주 섭섭해진다. 배려일 가능성이 더 큰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샐쭉해졌다. 특별히 무슨 사건이 있었다든가 한 것은 아니지만 순전히 나만 느끼는 어떤 기미, 사소한 눈빛과 말투와 분위기 같은 것에 속을 끓였다. (p.170)


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유독 더 눈치가 보인다. 유치해 보이고, 노처녀 히스테린가 싶고, (제일 악독하다는) 젊은 꼰대 같고 아무튼 모든 게 감정조절이나 표현 조절이 안 돼버리는 미성숙한 사람이 나인 것 같아서 퇴근길이,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축축 쳐진다. 어렸을 때 상상한 30년 여러 모습 중에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SF급 테크날리지는 아니더라도, 어른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는 건 정말 보통일은 아니다.



외롭긴 했지만 나는 이제 혼자 있는 것과 침묵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안부 문자를 보내볼까 하며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떠는 일도 줄었다. 혹시 누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지도 않았다. 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이면 가벼운 자학과 더불어 찾아오던,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불안감도 수그러들었다.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조바심도 사라졌다. 억지로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p.103)


대학 때부터 나는 혼자인 시간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관계들을 이어나가는 게 가장 큰 열! 정! 을 쏟았기에 혼자 있는 것은 둘째고, 해가 떠 있을 때 집에 들어온 적도 거의 없다. (오랜만에 만난 경영대 친구가 ‘문대 애들 중에 너 모르는 애가 없던데?’라고 말했을 때 묘한 즐거움이란) 그래서 처음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불안했다. 역시 다 필요 없고 인생은 혼자라며, 아무도 믿지 않는 각자도생의 삶을 추구하자를 주문처럼 읊조리면서 말이다.


인류 비관적 주문의 효과일까. 각자도생의 마인드가 정립이 된 건 줄 알았는데, 나는 그냥 익숙해진 것이다. 이 책의 말대로 가벼운 자학도, 격리의 불안감도, 혼자 있다는 조바심도, 외로움과 침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천천히 깨닫고 익숙해진 것이다. 멍청이. 믿지 못하는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르고. 으휴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사랑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해결해주리라 생각하지는 않게 된다. 그래도 사랑이 아무렇지도 않게 추락하고 발에 치이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사랑은 적당히 높은 곳에서 신비로운 모습으로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이 밥은 못 먹여줘도 배고픔은 잠시 잊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p.142)


딱 저거. 밥 먹여주진 않아도 배고픔은 잊게 해 주는 것. 왠지 모르게 짠하고 서러울 때 위로받을 수 있는 마음 누일 곳. 꽁꽁 싸매고 있는 마음을 허술하게 할 방법은 모르겠지만, 사랑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허튼 취급을 당하는 것도 보기가 싫은 것이다. 아! 이게 주문인가? 사랑이 다 이겨!! 사랑 최고!!!


쿨하게 33살


한창 서른에 광분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요즘 서점 트렌드는 '계란찜'같다던 사십대더라. 자라지 않으면 모든 성장통이 pain이라는 싸이월드급 갬성이 스멀스멀 기어오르지만, 그래도 사람이기에 오늘보다 나은 내가 되려고 이런 고민들을 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개울 돌다리뿐 아니라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들도 다 두드려보느라 정신없고 기운도 빠지지만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장통, 미래의 어느 한 지점에서 돌아보면 그때 잘했다고 뿌듯해 할 수 있는 고민이길 바란다. 어른도 살만해!


이전 07화 82년생 김지영, 조남주(2016)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다른사람이 읽어 주는 이야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