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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ul 09. 2019

이 사람들과 떠나야만 하는 이유

prologue. 우리가 우리로 떠나야 하는 사연

 그저 그런 여행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그렇지 않은 이 곳이어야 했다. 국민의 절반이 작가로 등록되어 있는, 1인 독서량도 지구급인 데다 음악도 사랑하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듣는 아이슬란드. 그래서 특별한 이 사람들이어야만 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만나서 한 권의 책을 가지고 대여섯 시간은 거뜬히 이야기하는 이 사람들. 책, 음악, 영화, 여행 그리고 기타 등등 물길을 틀면 트는 대로 넘쳐흐르는 과분하게 통하는 독서모임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독서모임 사람들과 간다고 했을 때, 주위의 눈초리들이, 말꼬리들이 흐려지는 게 어쩐지 불편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여행 간다는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들'이라고 스리슬적 얼버무리게 되었다.  '너 어지간히도 놀러 가고 싶구나'라고 눈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부정하고 싶은 걸 보니 이 사람들과의 지난 20개월,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니구나.


 독서모임 사람들. 내 인생에 이런 단어가 있을지 가늠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쌓일수록, 그것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면서부터는 사람이 좋아서 꼬리는 흔들어대지만 막상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심지어 사실 난 사람을 즐기지 않아라며, 그동안 내 자신에게 오해했던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믿고 싶고, 오래 의지하며, 길게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이렇게 만난 것도, 한 달의 한 번이 반드시 지켜지며 유지되어 가는 것도, 기억되는 추억이 늘어가는 것도 신기하다. 모든 약속에서 우선순위를 선점하며 모두가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공유하며 나누는 책 이야기라니. 5G 시대에 봉화를 띄우는 느낌이 이건가 싶겠지만 이 즐거움은 생각보다 매우 유쾌하고 심지어 뿌듯하기까지 하다. 특히 혼자 읽고 곱씹어 이해하던 슴슴한 즐거움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게 되는 몇 순간들은 외로운 공전에 축 처진 내 어깨를 당장 들어 올리게 한다.


  취향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는지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이 (반강제적으로) 늘어가면서 찾은 나만의 재미요소가 있는데, 이 재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 통할 것 같달까. 아마도 엄청 착하고, 쿨하고, 재밌고, 센스 있는 좋은 사람일 것 같달까. 이쯤 되면 취향이란 사람에 대한 거름종이쯤이 되어버린 것 같다. 쿵! 하면 짝! 을 말하고, 이크! 를 말하면 에크! 를 외치는 취향공동체와의 티키타카는 생각을 능가하고도 남을 만큼 훨씬 더 많이 신이 난다. 아직도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 사람들이어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하루키를 이야기할 수 있는 취저 독서와 지구 스케일의 배경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하는 취저 주크박스와 그리고 적절한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멀지만 가까운 거리를 가진 이 사람들. 게다가 신나면 들썩이는 어깨까지 지녔으니, 이 정도면 완벽한 동행이 아닐까.



 난 이제 떠난다.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겨두었던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내 삶에서 가장 두껍고, 가장 생생하게 기억될 것이다.



아무 곳에나 서점이 있는 아주 멋진 나라다 (심지어 기념품점 옆)
사실 우리의 첫 여행은 광대와 목소리를 잃게 한 제주도였다
노래 취향이 찰떡같은 이들과 그 곳에서 어떤 노래를 들을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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