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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Mar 29.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2021)

책 한 권을 필사할 뻔했던 why fish don’t exist



책의 줄거리를 모두 파악하고 책을 읽는 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정보없이 읽는 편도 아니다. 아니 그런데 이 책은 진짜 뭔놈의 신신당부들이 이렇게 많은지. 이것이 마케팅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블로그에도 글 서두에 ‘스포주의, 읽지마시오’ 가 써 있기도 하고, 유투브 영상 제목은 ‘ 이 책의 꽃 말은 스포일러를 말하지 마시오 입니다’라니 -이 유투버의 추천으로 이 책이 매우 흥하게 되었단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먼저 알았으면 안 읽을..었을..지..도…- 아무튼 모든 사람들이 대동단결하여 스포일러를 차단하는 것을 보니 ‘아니 그래서 도대체 뭔데’의 마음가짐으로 초반의 지루함을 견뎠다.


그 반전이라는 부분 말인데, 진짜 모르고 읃어 맞는게 낫다. ‘헐 대박’ 이 개념이 아니라 나의 경우에는 ‘아니 내가 지금 도대체 뭘 읽은거지?’ 싶었고, 주어를 혹시 잘못 이해했나 싶어서 다시 읽기도 했다. 당연히 돌아가 읽어도 이 ㅆㄹㄱ가 그 인물이 맞았고, 그제서야 아 이거 반전 ㅇㅋ. 크게 공감했다. 이 책의 꽃말인지, 씨앗인지, 뿌리인지 뭔지는 몰라도 일단 노 스포일드 인정. 그러니 혹시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제는 읽지 마시오. (그러나 최대한 스포일드 안해보겠음(?))


출처: 케이북kbook


1) 범주화

사람은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 같다. 이전부터 내가 누차 말하지만 쉽게 섣불리 판단되는 것을 매우 경계하지만, 나 역시 우매한 인간일 뿐이라 번번히 실패하고 마는데, 이건 아무래도 본능인 것 같다. 이 책의 각주에서도 생후 4개월만 되도 개와 고양이를 구분한다고 하니, 이것이 본능이 아니면 무엇인가 말인가! 이 본능을 우리가 비난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숙지해야하는 것은 이 범주가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분짓기는 생존을 위한 편리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예민하게 점검하고, 틀렸으면 바로바로 수정하기. 왜냐면 이 책의 제목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을 실제로 검토해볼 때,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무리해서 곡예를 해야한다. (중략) 사다리는 없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p206)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 밑에 가장 단순한 것들 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릴리라는 것. 진보로 나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p250)


2) 자기기만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수도 없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7장 파괴되지 않는 법과 8장 기만에 대하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집념으로 파고 들었던 연구업적들이 눈 앞에 정신없이 엎질러져 졌을 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동요하지 않고 바로 곧장 앞으로 나아간다. 돌아버려도 이해가 갔을 상황에서마저 극복의 과정이랄게 없어서 참으로 기이했는데, 이를 풀어낸 장이다.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고 갖고 싶어하는 핑크빛 자기기만, 끈질긴 투지(그릿) 의 동의어나 원동력을 긍정적 착각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선 후련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 때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기도 했던 그릿은 덕목일까. 사회의 강요는 아닐까. 하긴, 모든 것은 밸런스다.


암울한 현실일 수도 있는 것들이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인생에 활력을 가득 불어넣고, 아버지가 크고 대범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나는 평생 광대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 같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해왔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p58)



3) 연대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부분이긴하나,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냥 어쩌다 태어났고, 그 김에 또 어쩌다씩 살게되는데 그 생존에 용이해지기 위해 각기 다 다른 특성과 특장점을 갖고 있다고 이해하면 내가 너보가 낫네, 쟨 모지리네 이런 생각들 속에서 숨통은 틔일 수 있겠다싶다. 그 다음은 서로의 빈틈을 촘촘히 채워 가는 것. (앞으로 회사에서 열받으면 저 사람은 물고기다라도 생각을.. 아 이게 아닌데)

없던 동료애, 연대감을 넘어서 인류애도 생기고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해 질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말 할 수 없는 이 부분은 다큐인지, 과학서인지, 소설인지 모를 이 책에서 가장 소설다웠고, 꼭 필요했을까란 생각도 지울 순 없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p226)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p227​)


read it


처음에는 학명의 늪에 빠져서 글자만 읽고 있었지만, 고비만 지나면 된다. 지식을 때려 넣다가, 갑자기 허무주의가 펼쳐지고, 과학을 말하다 인류애로 빠지게 된다. 막연하게 행복과 희망을 추종하지도 않는다. 좌절앞에 쉽게 굴복하지도 않는다. 신세계가 펼쳐지는 신비로운 책이다. 흥미롭다라는 말도 부족하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반드시.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르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p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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