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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Aug 16. 2022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2021)

작별할 수 없기 때문에 작별하지 않는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 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뿐이라는 듯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가장 결연한 답변이 여기에 있다.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 (신형철)


신형철의 말에 깊은 공감을 넘어서 작가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한강이라는 작가는 구면임에도, 매번 기꺼이 타인의 경험에 증인이 되고야 마는 그의 책들은 매번이 초면인  마음을  잡게 한다. 결코 아무나에게 추천할  없는 책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게 되면 비로소 대승적인 유대감을 득할  있다. 시대가 외면한 실체 없는 환상통을 함께 겪는 독자들의 유대감. 요즘 누가 문학을 읽느냐고, 한국소설의 소재는 너무 뻔하다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을, 읽어냄을 멈출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 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나는 환경에 적응하는 (어쩌면 환경에 굴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용감한 사람들의 '용감함'은 이유를 불문하고,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책 역시 내가 동경하는 그런 용감함에 대한 책이다.

 <소년의 온다>에서 그녀는 자신이 화자가 되어 5·18 증언했고, <작별하지 않는다> 통해서는 기록하는 나가 되어 친구의 기억을 증언한다. 때로는 육중한  것의 단어로, 때로는 흩날릴 듯한 성긴 단어로 /우만이 존재했던  시간들을 눈으로 덮으려다 기어코 눈으로 명징해낸다.


네가 잘 보고 얘기해 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p.84)
무엇이 지금 우릴 보고 있나, 나는 생각했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누가 있나. 아니, 침묵하는 나무들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다. (p.320)




모처럼 한국어로 묘사되고 비유되는 한국소설을 읽는 한국인의 호사스러움을 느낀다.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105)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p.99)


이런 '고통을 고통으로 느껴' 바스락거리는 한 겨울 나뭇가지 같다가도,


압도적인 성량으로 끊임없이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던 여름이 갔다. (p.28)
종일 잠들어 있었어. 밀물 때가 지나치게 긴 이상한 바다처럼. 모래펄이 완전히 잠긴 뒤 다시는 바다가 빠져나가지 않는 것처럼.(p.314)


서정성이 어린 이런 문장들을 읽는 것이 정말 '좋다'생각했다. 그냥 좋다.



작별하지 않는다


아직은 작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하지 못한다. 인간으로서는 바랄 수 없지만, 독자로서는 한강이 한 번 더 사력을 다해 작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니 이 책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 맞다.



“답이 없다 생각할 때도 있고 우울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막연한 낙관은 갖고 있지 않은데 실낱같은 희망은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한은, 생명은 언제나 빛을 원하니까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싸우면서 기어가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하겠어요. 저는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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