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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26

by sunnyi
센츄럴 팤 , 맨햍-은, 뉴옄, 2026


5년에 한 번씩 주어지는 리프레시휴가. 너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즐겁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작년 하반기부터 '내년에 리프레시 어디 갈까, 언제 쓰지'를 되뇌었던 걸 보면 리프레시는 진짜 너무 설레는 것. 좋은 것.


벌써 3번째 리프레시 휴가인데, 첫 번째 리프레시는 풀기간을 유럽에 있었다. 5월에 네덜란드-벨기에-스페인-독일을 돌았는데, 나는 이때 기미를 얻었다. 유럽산 기미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좀 후회가 많이 된다. 유러피안처럼 돌아다닌 다고 유러피안이 되는 것이 아닌데 선크림에 선글라스 조합을 믿었던 걸까. 두 번째 리프레시는 코로나였다. 난 아직도 그게 2020년인지 2021년인지 2023년인지가 헷갈린다. 어쩜 지구인이 단체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통으로 기억에서 드러낸 그 시간. 그렇게 지구가 멈췄을 때엔 국내투어를 했다. 남도투어와 제주투어를 했더니 금방 가버렸다.


이번 세 번째 리프레시는 뉴욕으로 정했다. 대학생 때 잠깐 뉴욕에 있었는데 그때가 하필 외환위기라 모든 게 원화로 환산하면 너무나도 비쌌고, 복학하면 이제 졸업이라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아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저녁에 엄마랑 전화하는 게 낙이었다. (모든 것을 아끼고 전화비에 올인했던 기억) 그래서인지 그 뒤로 시애틀은 4번을 갔어도 뉴욕은 아껴뒀다. 자본주의 끝판왕의 도시에 꼬꼬마로 가기 싫었다. 그러고 달력을 보니까 2월이 좋겠다 싶었다. 그냥 2월이 딱 좋을 거 같았다.


"안 추워?" 뉴욕이니까 추워도 괜찮아. 뉴욕이니까 2월도 좋을 거야. "뉴욕에서 뭐 하게?" 뉴요커. 그냥 난 멋진 맨햍은 뉴요커.


그렇게 간 뉴욕은 체감기온 -26도. 폭설과 75년 만의 한파가 모든 것을 꽁꽁 묶어둔 도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바지가 그렇게 찢어질 거처럼 나부끼는 건 처음 봤달까. 얼굴에 동상 입은 게 아닌지 걱정되는 건 처음이랄까. 감자같이 보여서 서울에선 잘 쓰지도 않는 모자 위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것 역시 초면. 그래도 웃음이 났다. (웃을 때마다 이 시림)


미술관에서 미술작품 보라고 있는 소파에서 졸다가 친구에게 호텔로 연행돼서 오후 5시까지 기절한 사연, 카페에서 오케이 오케이 와이낫 이러다가 커피에 투 샷 때려 넣고 돈 (많이) 더 낸 사연, 왼쪽에선 청솔모들이 오른쪽에선 쥐ㅅㄲ들이 놀고 있는 소름돋던 상황, 오렌지 알레르기 있다고 말했다가 유아급 케어받은 사연, 안 추운 줄 알고 핫팩 안 붙이고 나왔다가 콧물 줄줄 흘리고 다녀서 친구한테 뺨싸다구 맞은 사연, 미슐랭 원스타갔는데 이 돈에 이 맛은 아닌 거 같다고 결론내고 이후 디너외식 절교한 사연, 가열차게 토끼같은 흰색 비니 샀는데 내가 쓰니까 그냥 정승대감 모자 된 거 실화? 저녁 마다 솔로지옥 5에 감정이입 (ㅅㅅㅇ과 ㅇㅅㅂ 에 대한 격렬한 토론-여출 관심 없음-)한 사연. 거리마다 눈이 산처럼 쌓여있던 2월의 뉴욕. 그냥 다 꿈같다.


시차적응에 실패해서 모든 일정 내내 새벽에 뜬 눈으로 두근두근 불안을 품에 앉고 살았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불안은 새벽을 사랑할까) 행복했다. 아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모든 가정에 대한 추측과 상상으로 인한 불안에 지지 않은 게 기특할 정도다. 장애물에 집중하면 장애물에 부딪힌다고 했던가. 장애물에 너무 골똘해서 불필요하게 부딪혀 왔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쉼이었다. 인지하기. 이게 모든 불안컨트롤의 첫 번째 스텝이라고 하던데, 혹시 내가 뉴욕에서 그걸 배운 걸까.


작년은 매 주를 견뎌내야하는 마음이 고된 한 해여서 웃고 있어도 마음 한 쪽은 늘 그늘 져 있던 것 같다. 뭐 늘 해만 맞이할 수 없는 법이고, 누구나 다 저마다 그늘이 있는 거니까. 누누히 생각하지만 각자가 만든 각자의 지옥에서 하덕이는데 내색하지 않을 뿐이니, 모두에게

친절해 질 것.


마음이 너무 강렬해 앞으로 몇 번을 더 남길지 모르는 뉴욕여행기록. 잘 먹고 잘 쉬는 거 이거 정말 좋은 거였다! 다녀오니 서울도 제법 봄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순간순간 만족스럽게 행복하게 잘 보내기. 나무보다는 숲을 보기. 일희일비 말고 이제는 이희이비 해보기. 멋진 40살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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