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지도는 내 안에 있다.
스물여섯, 5월의 시작.
끝없는 도망침 속에서
에너지를 잃었고, 답답했다.
더 이상 가면을 쓸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받으며 내 안에 있는 지도를 보려고 노력했다. 피가 흥건하게 흐르는 가운데, 오래도록 내 피부 속에 장착되어 있던 칩을 스스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현실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간절함에 비례한다면 이미 수없이 시작했어야 할 내가, 당장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간절히 직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이제는 알아야 했다.
원하는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을 나는 '작은 조각'이라고 불렀다. 작은 조각이 모여 꿈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작아서' 시작하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애착은 더욱 거대해서 꿈을 포기하지도 못하는 겁 많은 욕심쟁이가 숨어있었다. 숨어있던 그녀를 깨우고 작은 조각부터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나의 작은 조각은 '독립하기'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내가 선택하고 살아내는 것이 내 삶을 만들어갈 뿐. 더 이상 '아빠'라는 귀신을 등에 매고 다닐 필요가 없고, '집'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올라오면 "오-예"하고 외치며 현실감각을 깨울 것이다.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로 살던 나 자신을 넘어서기로 작정하며 내 안에 있는 목소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왜 너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거야, 코너로 모는 이유가 뭐니.네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너에게 더, 더, 더를 외치게 하는 그것이 뭘까?
누구의 기준일까? 너 자신일까, 아니면 타인일까?"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이 경제적인 독립인지, 그저 생계만 꾸릴 정도면 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얼마를 벌면 만족할 건지' 등의 질문들 속에서 머리로는 공부 혹은 취업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다독여보지만 마음은 끄떡없다. 내 인생에 후회하지 않을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하는 것, 스스로에게 솔직한 선택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임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을 깨는 대답'이라 쓰고 "평안한 대답"이라고 말하며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부터 딱 3개월 후에 영국으로 떠나서 나를 넘어서는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살아줄 수 없다. 나 스스로를 가둬둘 수 없다.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가는 것이다. 그저 욕심만 많고 시작하지 못하는 나, 나의 작은 조각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선택해야만 시작할 수 있다.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지금까지는 내가 부족해서, 약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과연 약할까? 아니,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 내가 의지하고 있던 그 무엇도 없이 나 홀로 서는 것의 시작이다. "난 할 수 있다, 무조건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하고 말해본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무엇 때문에 답답한지, 과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안에 있는 내 인생의 지도는 나만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는 돈을 위해, 자식을 위해 오늘도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계시다. 부모님은 그리 간절히 바라는 삶에 도착할 수 있을까. 여전히 엄마가 만들어준 그늘 밑에 피해 있는 나는 "엄마, 조금만 더 힘을 내. 결국엔 도착할 거야. 말할 자격이 없다. (...)
"우린 정말,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거잖아."
아빠와 나이가 같은 캐나다 친구 잭이 말한다. 한 번뿐인 인생. 네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깨닫고 가라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네 존재를 너 스스로 깨닫는 거라고. 너는 참 예쁜 아이라고 말이다.
최예지, <<의외로 간단한 :)>>
이젠 부모님의 그늘을 떠나 나의 인생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내 존재를 스스로 깨달으며 '정보선'이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드러내는 가슴 뛰는 시작이다. 두려움이 나타나면 수 없이 외치며 가자. "오-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