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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티쪼가리 말고, 제대로 입고 와요

집에 가서 펑펑 울었던 한 마디

며칠 전, 알고리즘을 타고 심리상담사 이호선교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지식인사이드 유튜브채널에서 "옷부터 잘 입으세요"라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기억이 이미 많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활동가 수업을 듣고 발표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내 생애 첫 공연?!

어린이 100명을 초대해서 행사를 했다. 수강생들에게는 자격증 과정의 최종 관문 같은 시험이었다. 2~3명이 1팀을 이뤘는데, 그중에서 각 팀의 대표만 공연을 했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공연자는 옷차림을 단정하게 입고 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애 둘을 막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제야 바깥바람 좀 느껴보는 애엄마에게 단정한 옷이란 뭘까 며칠 동안 고민했다. 집에 옷도 몇 벌 없지만, 남아 있는 옷이라곤 임부복, 수유복 외에 몇 벌 있지도 않았다. 새 옷을 하나 살까도 고민했지만, 1회 공연 때문에 투자할 만큼 앞으로 나의 행보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당일날, 무늬 없는 단정한 티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었다. 머리도 화장도 나름 신경 썼다. 공연을 했다. 엄청 떨렸지만 공연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흥이 나서 재밌게 잘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빵빵 터졌다. 속으로 '됐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상처가 된 한마디

공연을 마치고, 다 같이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긴장도 풀리고, 아이들 반응도 좋아서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갔다. 그때 식당으로 가는 길에 강사님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공연한다고 고생했어요. 다음에는 티쪼가리 입지 말고, 제대로 입고 와요."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얼굴에 핏기라 싹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리고 오늘 함께 공연을 한 다른 쌤들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내 옷차림이 그렇게 이상한가. 면티긴 하지만 블라우스 느낌의 절개가 있는 티셔츠라 갖고 있는 것 중에 제일 단정한 상의였다. 바지는 그냥 까만 바지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블라우스나 셔츠 같은 걸 입고 계셨다. 옷의 모양새가 문제라기보다, 소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사정이란 게 있을 수 있는 건데, 그 한 마디에 나는 눈치 없고 예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름답지 못했던 마무리

식당에 도착해서 밥을 먹었다. 공연 이야기를 나누며 나름 화기애애했는데,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냥 잘 끝냈다는 후련함을 느끼기도 전에, 강사님은 나에게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내가 그동안 연습하고 준비한 보람을 느끼기도 전에. 자존감이 팍팍 깎이는 기분이었다.


강사님은 다음 일정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나고 수강생들끼리 남았다. 강사님에 대한 불만과 섭섭함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수강생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던 쌤에게는 자꾸 제대로 못 한다고 혼냈다는 얘기, 공연에서 실수한 선생님에게는 연습 제대로 안 했냐는 얘기, 각자 강사님께 한 마디씩 듣고 기분이 나빠진 상태였다.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구나, 살짝 안심이 됐다. 한편으론 강사님은 왜 그렇게 수강생들에게 엄격하고 깐깐하게 굴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학기 새롭게 개설된 강좌에서 나를 포함한 3명의 수강생을 제외하고 모든 수강생이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


남은 3명도 가시방석이었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 도서관 담당자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담당자는 이제껏 기존 수강생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사실을 알게 된 도서관에서도 꽤나 난감해했다. 난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내서 수료증을 꼭 받고 싶었다. 수료증 발급에 두 달쯤 걸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참여한 것에 의의를 둔다.



생각의 변화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고, 패션에도 관심이 없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옷이 늘어나는 건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단정하게 외모를 꾸미는 건 이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외모는 자존감이다>와 <헤어스타일 하나 바꿨을 뿐인데> 두 책 덕분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독려하며 아이 둘 육아로 지하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겨우 끌어올렸건만, 강사의 그 한마디에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의 자존감은 다시 땅에 떨어졌다. 그날 집에 돌아가서, 펑펑 울정도로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 경험을 쌓으며 강사로 성장했다. 활동을 시작하며 학교나 기관으로 찾아가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니멀한 옷장을 소유한 나는 마치 교복처럼 같은 옷만 주구장창 입는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더 단정하게 입으려고 노력하고 머리와 화장, 액세서리에도 더 신경 쓰게 되었다.


그리고 강사 경력 3년 차쯤 되었을 때 돌아보니, 기분 나빴던 그때의 그 말은 나의 강사 활동에 꼭 필요한 조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상대방을 배려해 좀 더 기분 나쁘지 않게 얘기해 주었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옷을 입고 수업을 갈 준비를 하는 순간부터, 엄마였다가 강사로 출근하는 기분이 든다. 책임감이 생긴다. 옷을 단정하게 입으면 강의를 듣는 아이들도 나에게 더 잘 집중하고 따르는 느낌이 든다. 칠판 앞에 서 있을 때도 허리가 꼿꼿하게 세워지고 당당해지는 기분이 든다.



옷차림의 자유

하지만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실력만 좋으면 복장이 아무리 개떡 같아도 아이들의 반응이 좋을 수도 있다. 불편한 옷차림이 오히려 수업에 방해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요즘 학교에서 만나는 MZ세대 선생님들은 복장이 아주 자유롭다. 스포츠레깅스 입으신 분, 반바지를 입으신 분도 봤고, 운동복 차림인 선생님도 본 적 있다. 이제 학교는 다양한 복장의 선생님이 공존하는 곳이다. 학교선생님의 복장이 자유로워진 만큼, 외부강사들의 복장이 편하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내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주고 싶고, 첫인상이 좋으려면 조금 식상하긴 하지만 예뻐 보이는 게 최고다. 예쁘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화장을 안 한 것보단 한 게 이뻐 보이고, 머리가 밋밋한 것보단 스타일링한 게 이뻐 보인다. 비록 허리가 고무밴딩 바지지만 슬랙스 느낌이 나는 걸 입고, 상의는 티셔츠를 입더라도 조금 더 단정한 걸 입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게 나는, 옷차림을 통해 전체적으로 에너지 넘치지만 세련된 느낌을 갖고 싶었다. 나를 단장하고 옷차림에 신경 쓰는 건, 마치 전투복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

옷차림은 분명 개인의 취향이지만, 때로는 상대에게 나를 소개하는 첫 번째 언어가 되기도 한다. 무조건 꾸미라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누군가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싶다면,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즐 수 있는 입장이 된다면, 예전 그 강사처럼 상처 주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억지로 꾸밀 필요는 없어. 하지만 너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네가 입는 옷과 네가 보여주는 모습에 신경을 쓰는 게 좋아. 그게 너 스스로를 증명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




그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서 깨달음이 되었고, 이제 나는 나만의 전투복을 입고 하루를 당당하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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