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적응, 진짜 정착
신혼일 땐, 마냥 즐거웠다. 결혼 전 경력 덕분에, 몇 달은 재택근무로 바빴다. 남편은 회사일과 농사일을 병행하느라 정말 힘들었겠지만, 나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집순이로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주말엔 남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논에 따라다니는 것도 마냥 재밌었다. 시골풍경 사진도 찍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그렇게 시골생활에 익숙해지며 점점 스며들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매일매일 맥주 한 잔과 야식을 즐겼다. 그땐 그게 신혼생활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먹었다. 덕분에 결혼하고 살이 부쩍 늘어났다. 살 좀 빼보겠다고 읍내에 신개업한 핫요가학원에 갔다. '1년 치 선결제하면 50% 할인'이란 상술에 넘어가 50만 원 정도를 결제했다.
핫요가를 두 달쯤 다녔을 때였다. 그날따라 운동이 과격했는지 몸살이 심하게 왔다. 이틀 동안 정말 꿈쩍도 못하고 뻗어버렸다. 몸살은 나을 기미가 없었다. 마침 생리도 늦어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테기를 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임신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나는 속상해서 펑펑 울었다. 아직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가 1도 안 된 상태였다. 지금부터 평생 '엄마'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결국 핫요가는 1년 치 중 2달만 다니고 돈을 날렸다. 겨울에 같이 스노보드 타자고 시즌권도 끊었는데, 시작도 못해보고 환불받았다. 평범하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임신'이 내 발목을 잡아버린 느낌이었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임신 중 우울감이 심했다. 처음엔 마냥 좋기만 하던 혼자 있는 시간은, 시골집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진천군에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과 시어머니 딱 2명뿐이었다. 만날 사람도, 나 혼자 갈 곳도 없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상쾌했던 시골생활은,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참 외로웠다.
그때부터 남편이랑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로 서로 섭섭해하고, 소심하게 삐졌다. 나는 나대로 힘들었고,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었다. 누군가 그랬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라고. 그때 우린 각자의 힘듦을 이해해 줄 체력이 모자랐다. 이걸 깨닫는데 10년이 걸렸다.
외롭던 농촌생활은, 아이를 낳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시골마을에 '갓난아기'가 나타난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멀리서 시집온 외부인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우리 동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녔다.
임신출산을 겪으며 그동안 갈 일 없던 보건소, 면사무소, 도서관, 병원, 약국 등 곳곳을 방문해야만 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보건소와 도서관에서 열리는 영유아 프로그램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 없이 혼자서 갈 곳들이 점점 늘어났다.
보건소에서 임산부 꾸러미, 이유식 꾸러미 같은 것도 보내줬다. 지자체에서 나오는 출산장려금이랑 아동수당도 나왔다. 나를 주민으로 인정해 주고, 자꾸 챙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지역 맘카페에서 육아용품을 중고거래하며 지역주민들과 만날 일이 종종 생겼다. 어느덧 나는 카페 우수회원이 됐다. 도서관, 여성회관, 사회복지관 등에서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갈 곳'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 나는 비로소 농촌마을에 '진짜 정착'을 했다.
진천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건 '소속감'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부산에서 온' 사람이었고, 아기를 낳고 나는 '진천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부산에 친정나들이를 가면, 가슴이 답답하다. 복잡한 도로와 빽빽한 건물들, 북적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불편했다. 살고 있을 땐 몰랐던 단점들만 자꾸 보인다. "난 이제 부산에서 못 살겠다!!!"
나쁜 상황이 왔다는 건, 운이 좋아진다는 예고다... 대운이 들어올 때의 첫 번째 조건, 환경이 바뀌는 것이야말로 내 운이 트이는 첫 번째 관문이다. 행운이 찾아올 때는 타의로 환경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자의로는 익숙해진 터전을 떠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한재윤 < 크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