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재무장관
나는 돈을 좋아했다. 내가 7살 어린이집 다닐 때 엄마가 매일 200원씩 용돈을 주셨다. 그때 빅파이가 1개 50원, 초코파이가 1개 100원 하던 기억이 난다. 난 그 200원을 아끼고 남겨서, 은행에 저금을 했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용돈기입장을 썼다. 돈이 얼마가 들어와서, 얼마나 나가는지 메모하는 게 재밌었다. 그리고 남길 수 있는 돈은 최대로 남겨서 저축을 했다. 30만 원쯤 돈이 모이면, 목돈으로 찾아서 엄마에게 용돈을 드렸다. 돈을 모아서, 살림에 보탬이 되는 기분이 참 좋았다.
돈 때문인지 나는 수학을 참 좋아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때부터 시작된 경제관념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난 지금도 돈 모으는 게 재밌다. 일찌감치 회계나 세무 쪽도 공부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전공 따라간다고, 막상 취업에 실용적인 공부는 제대로 못 한 게 참 아쉽다.
결혼을 했다. 이제 남편의 돈걱정은, '우리의 돈걱정'이 되었다. 돈은 그 자체로 고민이기도 했고, 해결해고 풀어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난 그 문제를 꼭 풀어보고 싶었다. 남편에겐 대출이 3억 있었고, 농사수익과 월급은 현금으로 갖고 있었다. 예금, 적금은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분가는 처음부터 결혼계획에 없었다.
우리 둘이 신혼집을 구할 여유도 없었고, 어머님께서 혼자 생활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시골집에서 어머님과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남아있던 돈을 모두 털어서 시골집을 리모델링했다.
결혼 후 남편을 돕기 위해 농업인이 되었지만, 트럭운전도 서툴고 체력은 부실하고 처음 하는 일이라 일머리도 없으니 괜히 눈치만 보였다. 남편의 무거운 어깨에 나까지 업혀있는 느낌이었다. 회사 관두면 룰루랄라 신나기만 할 것 같았는데, 갑자기 백수가 되니 자존감이 뚝 떨어졌다. '여기서 나의 쓸모는 뭘까?' 고민하다가, 남편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자산관리를 자청했다.
결혼 전부터 돈관리로 머리가 아팠던 남편은, '얼쑤 좋다!'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과 금융자료를 넘겼다. 통장, 도장, 그리고 공인인증서, 심지어 OTP까지. 남편이 나를 믿고(어차피 뺏길 것도 없으니까), 모든 돈을(모든 대출을) 맡겼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모든 걸 공유하는 진짜 부부, 같은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진짜 한 팀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우리 집 재무장관이 되었다.
할 일이 생기자 의욕이 넘쳤다. 나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 우리 집 재정난을 반드시 극복해내고 싶었다. 엑셀로 재산현황표를 만들고, 수입과 지출을 관리했다. 월급 통장과 농사자금 통장을 분리해서 월급은 생활비로, 농사자금은 농사에 필요한 곳에만 쓰기로 했다. 대출이자 상환도 미리미리 체크해서 준비하고, 남은 돈과 필요한 돈을 관리했다.
돈은 버는 속도보다, 쓰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들어오는 돈은 한계가 있으니, 나가는 돈을 줄여야 했다. 고정지출을 정리하고, 변동지출을 줄여나갔다. 쓸데없이 줄줄 새는 돈은 없는지, 통신비부터 전기세, 보험료 등 모든 소비를 점검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있을 때면, 하루 종일 엑셀표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출상환일은 왜 이렇게 빨리 찾아오는지. 빨리 싹 다 갚아 버리고 싶은데, 불가능한 현실이 숫자로 보이니 답답했다. 그렇게 남편은 대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고, 재정관리 위탁에 성공했다.
"여보, 가계부 보니까 너무 우울해 ㅠㅠ"
"왜~, 돈관리하는 거 재밌다며. 난 너한테 다 주고 이제 스트레스 안 받아서 좋아!ㅋㅋㅋ"
행복한 삶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 열심히 살기로 선택하는데서 시작한다. - 브리에나 위스트 <내 최고의 하루는 오늘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