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동료가 돼라

장거리 연애의 끝

전남친은 투잡을 시작하면서, 농사량을 많이 줄였다. 시간도 체력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유지하기로 했다. 2년 정도는 농사에 적응하는 기간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3억 대출 상환 계획을 세웠다.


농사수익은 대출 원금 및 이자 상환, 다음 해 농사자금으로 사용한다. 월급만으로 생활하기엔, 시골 주택 유지비가 생각보다 컸다. 특히, 겨울철 난방비가 한 달에 40~50만 원씩 나왔다. 되도록 월급으로 생활하되, 주택유지로 부족한 생활비는 농사수익에서 보충했다. 그렇게 1년에 3천만 원씩 갚고, 10년 뒤에 3억을 다 갚는 게 목표였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 옆에서 지켜보며, 3억이란 막막했던 대출이 전남친의 계획대로 잘 갚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장거리연애였기에 바쁜 전남친과 자주 못 만난다고 싸울 일 없었고, 가끔씩 만나면 더 애틋하고 좋았다. 책임 없는 농촌체험을 더 자주 하게 되었고, 덕분에 결혼 전 이미 시골생활에 완벽 적응해 버렸다. 그렇게 우린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전남친은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누나들은 청주에 살았다. 장거리 연애한 지 3년이 되던 12월쯤, 전남친을 만나러 진천에 갔다. 누나네랑 다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며, 나를 작은누나네 집으로 데려갔다. 주택가라서 골목길이 무척 어두컴컴했는데, 누나네 집 2층에서 검은 그림자가 후다닥 뛰어가는 게 보였다. 누나네 집엔 실제로 도둑이 2번이나 침입했다. 그 후덜덜한 경험담을 직접 들었기에, 빈집인 2층의 검은 그림자를 보고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봤어? 누가 2층에서 도망가던데?? 도둑 아니야??" "어디? 도둑고양이 아니야?"


다급한 나와 달리 느긋한 전남친 때문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평소라면 1층 집으로 들어갈 텐데, 전남친은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도둑 있나 확인하러 가나?' 좀 무서웠지만 전남친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TV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촛불이 여기저기 켜져 있고, 천장엔 풍선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렇다. 프러포즈였다.


낮에 미리 친구랑 풍선장식과 초세팅을 했단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내가 본 검은 그림자는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촛불을 켜고 도망가던 누나였다. 노트북엔 그동안 함께 찍은 사진들로 만든 동영상과 이승기의 '나랑 결혼해 줄래'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꽃다발까지. 이런, 너무 갑작스러워 울 준비를 못 했는데. 그날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지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후다닥 도망가던 누나의 뒷모습만 자꾸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결혼식 날을 잡기로 했다. 농사철엔 바쁘니까 늦가을이나 초겨울쯤을 예상했다. 그런데 사주를 잘 보시는 시댁 이모님께서 4월 말쯤 결혼하는 게 좋다고 날을 정해주셨다. 4월 말이면 벼농사 준비로 한창 바쁠 때 결혼식을 하라고? 그땐 사실 얼마나 바쁜지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4월 말에 일주일씩 신혼여행을 갔다는 참으로 놀랍다. 물론, 남편은 신혼여행 내내 어머님께 수시로 전화해서 논에 물 있는지 보고 오라고 난리였지만.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모내기가 시작됐다. 결혼 전 재밌기만 하던 농촌체험은 끝났다. 밥을 차리고 치우는 것도 내 몫이 되었고, 흙 묻은 작업복을 헹구고 빨래하는 것도 내 일이 되었다. 주말마다 일손 도우러 시댁식구들이 모두 모였고, 집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책임 없던 농촌체험이, 책임 있는 노동으로 바뀌었다.


힘들었지만, 그땐 그 마저도 좋았다. 매일 남편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신혼이었다. 남편이 논에 갈 때나 창고에서 일할 때나 늘 밀착 수행했다. 할 줄 아는 건 1도 없지만,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는 건 자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은 든든한 '부하 1'을 얻었고, 남편의 큰 그림은 계획대로 흘러갔다.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짜서, 진짜로 이루고 싶은 일을 중심으로 삶을 설계하는 것만큼 탁월한 시간 관리는 없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 <시간관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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